신임 경찰청장 내정자와 '경찰의 표상'
신임 경철청장, 공비와 싸운 선배 외면한 코드 유지하나?
 
강철군화 프리존 논설가
서울경찰청장 재임시 최규식 경무관 등 추모비 건립 중단, 
공비-빨치산과 싸운 선배 경찰관들 외면한 이유는?
 
  
<경찰의 표상>

‘경찰의 표상’-최규식, 차일혁, 안병화, 김유연

작년 2월 서울경찰청은 경찰청사 뒤뜰에 '서울경찰 기념공원'을 설립하는 계획을 세웠다. 6-25 이후 순직한 경찰관 중 가장 모범이 되는 네 명을 뽑아 추모비를 세우겠다는 계획이었다. 서울경찰청 직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77.8%가 찬성하자, 서울경찰청은 6200만원의 예산을 들여 기념공원 설립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서울경찰청은 작년 4월 중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황우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경찰의 표상 선정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최규식 경무관(전 종로경찰서장), 차일혁 총경, 안병화 전남도경국장, 김유연 경사 등네 명을 '경찰의 표상'으로 선정했다.

최규식 전 종로경찰서장은 1968년 1-21사태 당시 서울 자하문 부근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침투한 북한 124군 부대원들을 저지하다가 전사한 분이다. 사후 경무관으로 추서되고, 사건 현장 인근에 동상이 건립됐다.

차일혁 총경은 6-25 당시 전투경찰 제18대대장으로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운 분이다. 특히 차 총경의 부대는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찰서장 재직 중이던 1958년 순직했다.

안병화 전 국장은 1980년 광주사태 당시 전남도경국장으로 강경진압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그는 광주사태가 진압된 후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연행돼 1주일 동안 고문을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1985년 사망했다.

김유연 경사는 1982년 서울 마포구 아현로터리에서 발생한 도시가스 누출사고 당시 가스를 마시고 쓰러진 인부 3명을 구하려다 함께 질식사했다.


작년 5월 돌연 기념공원 조성사업 중단

 

<서울경찰청 내 '서울경찰기념공원'. 사진에 보이는 돌기둥에

추모비를 세우려다 중단됐다.>

서울경찰청은  순직자 네 명을 선정한 후 경찰청 뒤뜰 기념공원(150평 규모)에 화강암으로 만든 조형물을 세웠다. 또 이 조형물 위에 청동조각상을 붙여 비신(碑身 ; 비석 본체)을 만들었다. 그 옆에는 돌기둥 5개를 세웠고, 이 중 4개에는 순직자 4명의 이름과 공적이 새겨진 추모비석을 붙일 예정이었다. 또 추모비에는 6-25 이후 순직경찰관 2280명의 명부도 새길 계획이었다.

제막식 날짜는 5월28일로 잡혔다. 서울경찰청은 유족 및 각계인사들에게  제막식 초청장도 보냈다.

그런데 제막식 사흘 전 서울경찰청은 돌연 참석대상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28일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다"는 이유로 제막식 연기를 통보했다. 사실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을 것이다. 이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늑장수사의 책임을 지고 서울경찰청장이 물러났기 때문이다.

새 서울경찰청장이 취임한 후에도 추모비 건립과 제막식은 마냥 미뤄졌다. 유족들이 항의하자 작년 6월 경찰은  돌기둥에 추모글귀가 새겨진 ‘오석(烏石)'을 붙였다. 하지만 이것도 며칠 만에 떼어냈다. 유족들은 이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언론이 이를 문제 삼자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추모비 바로 밑 지하 1층에 근무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비석 아래라서 불쾌하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직원들의 반발 때문에 계획을 수정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표상’으로 꼽힌 네 사람 중 두 명이 서울 경찰청 소속이 아니다","이미 다른 곳에 동상이나 추모비가 있다"는 이유도 제기됐다.

그러자 1968년 1-21사태 때 전사한 최규식 경무관의 아들 최민식(45)씨는 “아버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면서 “‘서울경찰청 직원들이 추모비 아래 공간에서 근무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너무 불쾌했다”고 말했다. 다른 유족은 “우리가 먼저 요구한 것도 아니고 경찰에서 추모비 제막식 초청장까지 보내더니 이제 와서 계획을 취소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경찰이 추모비 건립을 중단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기념공원 설립 계획시 직원 대부분이 찬성했는데, 일부가 그런 불평을 한다고 해서 기념공원 설립을 중단했다는 것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인가?

설사 그런 불평이 있다 해도 그건 나라를 위해 일하다 죽은 선배 경찰들의 희생을 도외시하는 싸가지 없는 행동이다. 서울경찰청장은 마땅히 그런 불평을 잠재우고 기념공원 건립을 예정대로 진행시켰어야 마땅하다. 그게 진정한 경찰지휘부가 할 일이었다.

네 사람 중 두 명이 서울경찰청 소속이 아니라지만, 이것도 군색한 얘기다. 당초부터 서울경찰청은 ‘경찰의 표상’을 기념하려 했지, ‘서울경찰의 표상’을 기념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또 작년 4월 선정위원회에서 위의 네 명을 선정했을 때에도 서울경찰청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과 ‘코드’가 안 맞아서였나? 어쩌면 진실은 다른 데 있는지도 모른다.

‘경찰의 표상’으로 선정된 네 사람 가운데 최규식 전 종로경찰서장은 1-21사태 당시 북한 무장공비들과 싸우다 전사한 분이고, 차일혁 총경은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한 분이다. 한 마디로 노무현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는 분들이었던 것이다. 당시 관련 기사 밑에는 “경찰이 빨갱이 사위 노무현과 코드 맞추느라고 그런 것 아니겠느냐?”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었다.

위 기념사업이 중단되었을 때의 서울경찰청장이 신임 경찰청장으로 내정됐다. 청와대가 그를 추천했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도 이를 수락했다고 한다. 그가 1990년대 초 강남경찰서 정보과장으로 있을 때부터 이명박 당선자와 가깝게 지냈다는 얘기도 들린다.

나는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 개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보도에 의하면 경찰 내에 신망이 두터운 분이라고 한다. 경찰 내 요직을 역임했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측에서도 이의가 없는 것을 보면 경찰청장이 될만한 분이 아닌가 싶다.

다만 그가  경찰의 총수가 되기 위해서는 서울경찰청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경찰의 표상’ 추모비 건립 사업이 왜 그가 서울경찰청장에 취임한 후 유야무야됐는지에 대해 성실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서해교전 전사자들을 국가차원에서 추념하기로 한 새 정부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철군화 프리존 논설가: http://www.freezone.co.kr/]
기사입력: 2008/01/10 [08:02]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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