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선언 170년 맑스유령 한국 환생?
실패한 이데올로기에 불지피는 문재인 촛불정권
 
조영환 편집인

공산당선언 170- 마르크스의 유령 한국서 환생?

실패한 이데올로기에 불지피는 문재인 촛불정권

 

실패한 이데올로기, “마르크스주의는 진리 아닌 사이비 과학

시장(市場)이 존재하고 이윤을 내면 안 되는 경제가 공산주의 경제

사유재산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마르크스의 생각은 출발부터 틀렸다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협력과 동반자’ 대신 증오와 적을 선택한 건 큰 오류

강제로 국민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범죄

자본주의 개선 기여 인정되지만 가난과 불행의 공평한 분배만 가져왔다

빗나간 마르크스의 예언들은 모두 허구로 판명

지상낙원 약속했으나, 지옥 밖에 만들지 못했다

자본주의 사멸(死滅) 장담했으나 오히려 공산주의가 붕괴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 대신 WTO로 분열

세상을 바꾸자는 마르크스의 혁명구호는 반동으로 회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는 결코 오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제자에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호치민 티토 카스트로 김일성 포진

문재인도 마르크스의 충실한 제자가 되려는 속셈인가?”

거꾸로 가는 정부, 헌법·경제정책·교과서에 사회주의 강화

큰정부외치며 결과적 평등에 함몰돼 국가개입·분배만 강조

국내 시민단체·노조·교육현장에도 마르크스의 투쟁구호 세상을 바꾸자만 무성

서옥식 박사, “청와대는 국민대상 정책 연습하는 곳도 실험하는 곳 아니다

   

편집자 주()= 금년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과 사망135, 자본론(Das Kapital) 1권 출간 151년이 되는 해다. 특히 221일은 <폭력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자>는 공산당 선언 발표 170년이 되는 날이다. 아래 글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전공한 연합뉴스 편집국장 출신의 서옥식 박사(정치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가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 170년을 맞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빗나간 마르크스의 예언들은 정리하고 문재인 촛불정권의 친()사회주의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자본주의 타도 강령으로서의 공산당선언

 

하나의 유령-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중략...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목적을 감추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목적이 오직 기존의 모든 사회적 조건을 힘으로 타도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선포한다. 모든 지배계급을 공산주의혁명 앞에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A spectre is haunting Europe - the spectre of communism... The communists disdain to conceal their views and aims. They openly declare that their ends can be attained only by the forcible overthrow of all existing social conditions. Let the ruling classes tremble at a Communistic revolution. The proletarians have nothing to lose but their chains. They have a world to win. Working men of all countries, unite!)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일이다(The philosophers have only interpreted the world in various ways; the point, however, is to change it.Karl Marx, Theses on Feuerbach XI)

 

마르크스주의는 물속에 있는 물고기와 같은 19 세기 사상에서 존재한다 : , 다른 곳에서는 호흡 할 수 없다(Marxism exists in nineteenth-century thought like a fish in water: that is, it is unable to breathe anywhere else.)

 

20대에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지 않는 사람은 가슴(감성과 열정)이 없는 사람이고, 30대 이후에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있는 사람은 머리(이성과 논리)가 없는 사람이다(If you're not a Marxist at 20, there's something wrong with your heart. If you're still a Marxist at 30, there's something with your head.)

 

자본주의의 고질적 약점은 행복의 불공평한 분배이고 사회주의의 고질적 약점은 불행의 공평한 분배이다(The inherent vice of capitalism is the unequal sharing of blessings; the inherent virtue of socialism is the equal sharing of miseries.)

 

사회주의자들의 꿈은 지상낙원이 아닌 행렬의 낙원이다(The Socialist dream is no longer of Utopia, but Queuetopia.)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낸다/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최선의 의도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단지 하나의 지옥, 인간만이 그의 동포를 위해 준비하는 그런 지옥을 만들 뿐이다(The attempt to make heaven on earth invariably produces hell./Even with the best intentions of making heaven on earth it only succeeds in making it a hell&#8212;that hell which man alone prepares for his fellow-men.)

 

사회주의자들이 경제를 이해했다면 그들은 이미 사회주의자가 아니다(If socialists understood economics, they wouldn't be socialist.)

 

공산주의는 금주법과 같다. 좋은 생각이지만 제대로 실행될 턱이 없다(Communism is like prohibition, It's a good idea but it won't work.)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다(Marxism is the opium of the intellectuals.)

 

은 공산주의 시조 마르크스(Karl Marx)와 그의 친구 엥겔스(Friedrich Engels)1848년 런던에서 발표한 그 유명한 공산당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Manifesto of Communist Party)의 첫 대목과 마지막 대목을 소개한 것이다. 능력껏 일하지만 필요에 따라 가져가 풍요한 물질생활을 누리고, 노동하는 일상생활이 재미있고 여유 있으며, 계급도, 군대도, 법도, 국가도 없는 지상천국이 이룩된다는 공산주의자들의 낙원으로 가는 길’(the way to paradise)의 거짓 각본이다.

 

는 런던의 하이게이트 묘지(Highgate Cemetery)에 안치된 마르크스의 대형 대리석 묘비에 새겨져 있는 글. 혁명가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11번째 테제로 역사를 계급투쟁으로 규정, 무덤에서도 프롤레타리아트가 폭력혁명을 통해 부르주아지를 때려 부수고 주인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세상을 바꾸자는 투쟁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사물의 질서: 인간과학의 고고학(The Order of Things: An Archaeology of the Human Sciences)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 즉, 19세기를 염두에 둔 것으로 오늘의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면서 한 말.

 

는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전 영국 총리가 한 말로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는 빈곤의 공평한 분배 즉, 가난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온 사회주의를 비판한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명언.

 

‘Queuetopia’는 처칠 전 영국 총리가 만들어 낸 말로 식사나 생필품 배급을 받기위해 길게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회주의 국가의 참담한 실상을 지적한 것.

 

은 폭력혁명을 통해 타도해야 할 적()으로 자본주의를 지목한 마르크스의 사상이 처음부터 커다란 오류였다며 마르크스를 혹독히 비판해온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 카를 포퍼(Karl Raimund Popper)가 그의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1945)>>에서 쓴 말이다. 이와 비숫한 말로 미국 작가 존 위노크어(Jon Winokur)가 쓴 <In Passing: Condolences and Complaints on Death, Dying, and Related Disappointments>144쪽에 지상낙원을 약속한 자들은 지옥밖에 만들지 못한다”(Those who promise us paradise on earth never produced anything but a hell.)

것이 있다.

 

노예로 가는 길’(The Road to Serfdom)을 쓴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 겸 정치철학자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사회주의는 인간은 노예로 만든다며 남긴 말.

 

미국의 연극배우이자 라디오 방송인, 저술가, 저널리스트, 영화배우 등으로 활약한 윌 로저스(Will Rogers, 1879 - 1935)의 말이다.

 

은 마르크스의 어록인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 프랑스의 정치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Raymond Aron)의 말이다.

 

금년은 마르크스 탄생 200(181855일생), 마르크스 사망 135(1883314)되는 해다. 특히 221일은 30세의 마르크스가 친구 엥겔스와 함께 런던에서 공산당선언을 발표한지 170년이 되는 날이다. 올해는 또 마르크스가 자본’(원제: Das Kapital) 1권을 출간한 지 151(1867914)이 되는 해다.

 

영국의 가디언지를 비록한 현지 언론들은 마르크스탄생 200년과 공산당선언 170, 사망 135년을 맞아 그의 고향인 독일과 공산당선언을 발표했던 영국에서 관련 서적 출간과 전시, 학술회 등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그러나 공산당선언의 근본 사상은 엥겔스가 1883년 독일어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전적으로 마르크스의 것이다)가 국제 노동자 조직인 공산주의동맹의 의뢰로 저술한 소책자 형태의 이론적 실천적 강령인 이 공산당선언은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로 빛을 잃고 있지만 창세 이래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진 베스트셀러로 인정돼 왔다. “20대에 마르크스에 미치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처럼 이 책은 유토피안 드림의 향수에 젖어 현실사회를 비판하는 데에 혈안이 돼온 젊은이들과 소위 식자층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월러스타인(Immannuel Wallerstein)“19세기의 유일한 미래학자가 있다면 마르크스요, 유일한 미래학이 있다면 그것은 공산주의라고 평할 만큼 이 책의 통찰력은 놀라웠다. 마르크스의 자본’ 1권의 초판도 1천부가 소진되는 데 5년이나 걸렸지만 20세기를 뒤흔든 사회주의 열풍의 사상적 토대가 됐다. 이 책은 세기말인 1999년 영국 BBC 설문조사에서 지난 1천년 동안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으로 선정됐을 정도다.

 

공산당 선언은 서문과 4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서문 하나의 유령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라는 문장은 선언의 마지막 구절과 함께, 이후 역사적 정치적 수사에 곧잘 인용돼 왔다.

 

 

1875년의 마르크스(사진 출처=위키피디어공산주의의 대표적인 문양 낫과 망치

 

1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Bourgeois and Proletarians)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발생과 발전,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과 그 멸망의 불가피성을 언급했으며 경제적 이해관계의 대립에 기초한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의 계급투쟁이 인류 역사의 기본 내용이며 사회발전의 추동력이라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1장에서 부르주아가 이룬 막대한 업적을 찬양했으나, 선언이 쓰여진 시점에서 부르주아는 명계(冥界)에서 불러낸 마물(魔物)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 마법사와 같이 자본의 노예가 됐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과거 봉건계급도 부르주아도 아닌 새롭게 떠오른 노동자 중심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역이 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2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Proletarians and Communists)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목적과 과업이 프롤레타리아의 목적 및 과업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프롤레타리아 주도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3사회주의 문헌과 공산주의 문헌(Socialist and Communist Literature)에서는 기독교사회주의 등의 기존 사회주의 조류들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 비판은 1872년 당시에 이미 동시성을 상실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다.

 

4기존의 여러 반대파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Position of the Communists in Relation to the Various Existing Opposition Parties)에서는 각국 공산당들의 기본적인 혁명 전략을 다루고 있으나 실제로 선언의 강령에 따라 이루어진 공산주의 혁명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선언은 국제적 단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산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족쇄)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계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로 끝을 맺는다.

  

유럽 각국에서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쳐가던 19세기 중반, 마르크스는 자본의 논리에 짓눌리고 종국엔 비참한 처지로 내팽개쳐지는 인간에 주목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그런 인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인간주의(humanism)적인 입장 즉,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socialism with human face)라고 해석해 왔다. 이처럼 공산당 선언만큼 당시의 자본주의를 날카롭게 분석한 저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그전까지 누구도 깨닫지 못했던, 자본주의의 폐해로 인해 빚어지는 인간 소외(疏外, alienation)의 문제를 정확하게 짚었기 때문이다

 

이 선언은 자본주의의 사멸은 필연적이라면서 궁극목표로 자본주의 타도를 천명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첫째, 자본주의는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투쟁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를 멸망시키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끊임없이 대립했으며,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투쟁을 끊임없이 계속했는데, 이 투쟁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재편되었든지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주의를 역사발전의 최후단계로 보는 것도 그런 논리에서다. 이들은 역사발전 단계를 원시공산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로 설정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 중간 단계를 사회주의로 설명한다.

 

둘째,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계급이 점점 더 수적(數的)으로 증가할 뿐 아니라 단결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멸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곤 임금의 노예라는 쇠사슬뿐이지만 얻을 것은 새로운 세계 전체라는 것이다. 셋째로 자본주의에서는 경제위기 또는 공황이 주기적으로 반복해 발생함으로써 수많은 기업이 도산, 노동자가 대규모로 실직하여 생존을 위협받게 되는데, 이는 자본주의적 사적(私的)소유와 경쟁 및 이윤 추구가 더 이상 생산력을 증가시키거나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피지배계급은 공장이나 기계, 토지 등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전환시키고, 생산의 목적을 자본가들의 이윤추구로부터 주민들의 욕구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변경시키며, 무정부적인 경쟁대신에 계획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선언의 핵심내용이다.

   

빗나간 마르크스의 예언들, 하지만 마르크스의 주요 예언들은 160년이 지났지만 모두 빗나갔다.

 

첫째, 자본주의가 결국 실업, 공황, 빈부격차 및 사회적 불평등 등 자기 모순으로 멸망할 것이라던 마르크스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가 붕괴된 것이 아니라 소련과 동구 국가들에서 보듯 공산진영이 붕괴됐다.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생산수단을 공유할 것을 천명했지만 생산수단을 공유·관리·독점하는 사회조직은 오히려 더 폐쇄적인 절대주의, 전체주의 체제를 만들어냈다. 

둘째, 만국의 노동자들은 단결 대신 세계무역기구(WTO)에 의해 분열됐다, 

셋째,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된 나라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난다고 했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어느 한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넷째, 국가는 사멸하는 것이 아니라 날이 갈수록 그 기능과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다섯째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가져간다(소득분배가 이뤄진다)는 주장은 실현되지 않았다.(참고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비교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지만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기 때문에 일한만큼 가져가지 못하는 사회이고, 사회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만큼 가져가는 사회이며, 공산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사회로 설명된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가져간다는 주장은 실현 불가능한 완전한 허구다. 이런 주장이 성립되려면 자원이 무제한으로 존재하거나 생산돼야한다. 또한 모든 사람이 예수나 석가처럼 이타적이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은 이후 공산당 엘리트들의 지배권력을 정당화하는 소위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경직화되고, 이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던 소련과 동구 국가들의 현실사회주의’(really existing socialism)가 붕괴함으로써 더 이상 절대적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자본주의는 자기모순에 의한 파국을 맞이하기는커녕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으며, 공산주의의 이념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구시대의 유물로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하는 듯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르크스가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던 베를린의 훔볼트대학(Humboldt-Universitat zu Berlin) 본관 입구에는 런던의 공동묘지 묘비문에 새겨진 영문 어록과 동일한 것이 독일어(Die Philosophen haben die Welt nur verschieden interpretiert; es kommt darauf an, sie zu verndern.)로 새겨져 있다.

 

이에 대해 포퍼(Karl Popper)는 마르크스주의는 공산당선언에서 보듯 출발점부터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은 인류의 주요 문제를 푸는 데 서로 협력할 동반자를 발견하는 대신에 ’(enemy)을 발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을 뉘우치게 하고 사랑의 힘으로 포용하며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폭력으로 파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폭력혁명을 통해 타도되어야 할 적으로 자본주의를 지목했다. 그들은 책임대신 증오를 선택했다. 이는 처음부터 커다란 오류였다.

 

원래 편 가르기는 공산주의 혁명의식의 출발점이다. 물질이 1차적이고 정신이 2차적이라고 보는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 정신이 1차적이고 물질이 2차적이라고 보는 관념론(觀念論, idealism)이 서로 대립돼 있는 것으로 인간과 우주를 설명함에 따라 공산주의자들은 동무가 아니면 모두가 원수로 보는 절대적 세계관을 내세우면서 자유민주주의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헛된 관념론자들이기 때문에 파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교의(敎義)에 따라 일찍이 그의 제자들인 레닌-트로츠키-스탈린-마오쩌둥(毛澤東)-호치민(胡志明)-티토-김일성(金日成)에 이르기까지 세계 육지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의 정치적·사상적 지도자들이 공산주의자를 자칭했다. 만년설로 뒤덮인 극지를 제외하고 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 공산정권이 세워졌다. 러셀과 사르트르에서 마르쿠제와 알튀세르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공산주의를 논했고, 피카소와 고리키에서 조지 오웰과 앙드레 지드까지 무수한 작가와 예술가들이 공산주의를 찬미하거나 비판했다. 그 이념은 역사상 가장 매혹적이었고, 실현되었을 때 가장 파괴적이었다

 

이들은 혁명을 진행하면서 한결같이 사회 성원 전체를 인민 대() 비인민으로 철저히 2분했다. ‘인민들 사이에만 동지적 민주주의 즉, 인민민주주의를 실시하고 비인민들에게는 적대적 독재를 시행하기 위해서였다. 혁명집단 북한도 세계를 미국에 대한 반제(反帝)투쟁으로 2분하고 미제(美帝)쪽에 선 것은 모조리 적으로 규정했다.

 

실제 소련의 사회주의 이론가 트로츠키(Leon Trotsky)는 영국에 첫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1925년에 펴낸 <영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Where Is Britain Going?, London: Socialist Labour League, 1960, 초판 1925)에서 먼저 적을 만들어라라고 노동자를 선동했다. 그는 사회주의 선동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사회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자본가와 노동자로 양분해 적을 만들고 끊임없이 적개심을 유발하라고 주문한다. 노동자계급은 산업사회에서 중심역할을 담당하지만 부르주아계급의 박해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평등사회를 건설하려는 투쟁의 선봉에서 적을 물리쳐야 한다고 격려한다.

 

트로츠키가 적으로 모는 집단은 부르주아지로 통칭되며 자본가, 지주계급, 기업가, 은행가, 왕족, 귀족, 성직자 등 출신성분이나 직업을 기준으로 구체화된다. 트로츠키가 사회구성원을 적과 동지로 양분하는 이유는, 노동자계급이 단결하여 적개심에 불타고 있어야 죽느냐 사느냐의 투쟁에서 승리한다는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투쟁 할 때는 혁명을 방해하는 반동세력과 맞서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의 각오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며’(life and death fight) 타협의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친다. 트로츠키는 그의 책 여러 곳에서 부르주아와 노동계급간의 투쟁에는 목숨과 죽음이 걸려 있다는 자극적인 표현, 예를 들면 struggle to the death, fight to the death, struggle for life or death, question of life or death 등을 사용하고 있다.

 

포퍼에 의하면 마르크스가 기술한 것과 같은 자본주의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 즉 그건 날조된 것이며 악마가 꾼 꿈같은 것이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개혁할 수 없고 파괴할 수만 있다는 주장이 마르크스의 주요 논지였지만, 당시의 자본주의는 개혁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살아 있던 동안에 영국과 독일 두 나라에서 많은 개혁이 이루어졌고, 그 후 끊임없이 중요한 개혁들이 이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말했던 노동자들과 자본가들 모두가 사태를 점점 더 악화시키는 기계장치 속에 붙잡혀 있는 그런 사회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경제가 사회의 생존에 큰 비중을 갖는다는 생각을 너무 과장했고, 모든 것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그는 경제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것은 분명 오류였다. 왜냐하면 사회는 매우 복잡한 실재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종교·국민성·우정·교육 등과 같은 다른 요소들도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2005531일 미국의 보수적인 시사주간지 휴먼 이벤츠(Human Events)’에 의해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가장 해로운 10대 서적(Ten Most Harmful Books of the 19th and 20th Centuries) 1위에 선정됐다. 또한 마르크스의 자본론(Das Kapital, 1867-1894) 역시 해악서적 6위에 랭크됐다(이밖에 히틀러(Adolf Hitler)의 나의 투쟁(Mein Kampf, 1925-1926)2, 마오쩌둥 어록(Quotations from Chairman Mao, 1966)3위에 올랐다).

 

공산당선언의 주요 경구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인간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부르주아지는 적나라한 이해관계, 무정한 현금지불이외에 인간들 사이에 다른 어떤 관계도 남겨놓지 않았다

-부르주아지는 인간의 존엄을 교환가치로 녹여 버렸고, 인간의 자유를 단 하나의 파렴치한 상거래의 자유로 대체했다

-부르주아계급은 가족관계조차 감상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순전히 금전관계로 만들었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자유란 상거래의 자유, 판매와 구매의 자유일 뿐이다

-부르주아지가 봉건제를 무너뜨릴 때 사용했던 무기가 이제 그 자신을 겨누게 되었다. 그 무기를 휘두를 노동자 계급을 낳았다

-부르주아계급이 성장하는 정도에 비례해서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도 성장한다

-노동자는 분업과 기계화로 말미암아 이제 단순한 도구나 부품이 되었고 매시간 감독하는 관리자, 사용주, 부르주아, 그리고 그 국가의 노예가 되었다

-부르주아지는 싫든 좋든 촉진시키지 않을 수없는 산업의 발달은 노동자를 고립시키지만 동시에 연합을 통해 그들을 혁명세력으로 만든다. 이리하여 부르주아지는 무엇보다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일꾼들을 양성해 낸 것이다.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피할 수없다

-이제까지의 소유(관계)를 폐지하는 것이 공산주의가 처음이 아니다. 프랑스혁명에서 부르주아지는 봉건적 소유제를 완전히 폐지시켰다. 그리고 부르주아지는 생산수단을 독점했다. 해서 사적소유를 폐지하고 박탈한 것은 부르주아지이다. 대다수의 노동자계급은 노동하고도 소유하지 못했고 부르주아지는 노동않고 소유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누구에게도 생산물을 취득할 힘을 빼앗지 않으며 다만 이런 취득을 통해 타인의 노동을 자신에게 종속시키는 힘을 박탈할뿐이다

-사적 소유를 철폐하면 그 순간, 사회는 게으름이 만연할 거라 비난한다. 그렇다면 진작에 부르주아지체제는 일순간에 몰락했어야 했다. 대다수는 소유하지 못하니까

-당신들의 법과 사상은 부르주아지의 생산체제와 소유관계의 부산물이고 지배수단과 도구에 불과하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국가를 장악하기 전까지는 그 자신이 민족적이다

-한 시대의 지배사상은 늘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노동계급 혁명의 첫걸음은 노동계급이 지배력을 장악해서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사회의 생산수단을 국가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수중에 귀속시킨다

-동자계급이 권력을 획득한다면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공동)체가 등장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모든 나라 민주주의 정당들의 단결을 위해 노력한다

-공산주의자는 자신들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는 자신들의 목적이 기존의 모든 사회 질서를 전복해야만 달성될 수 있음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부르주아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잃은 것이라곤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 전 세계의 노동자여여, 단결하라!

 

마르크스의 최대 오해: ‘사유재산은 만악(萬惡)의 근원

 

원래 사회주의는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내놓기 이전부터 사회개혁 사상의 하나로 등장해 왔다. 특히 18-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철학자들이 사회개혁을 주창하면서 들고 나온 것이다. 이들의 사회주의 사상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점, 예를 들면 실업, 공황, 빈부격차 및 사회적 불평등을 하나씩 고쳐 나가자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으로 지극히 온건한 인간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주의는 결국 자본주의의 경제적 원리인 개인주의를 제약함으로써 사회를 개조하려는 복합적인 사상이나 이념 및 운동을 의미하며 그 특성은 크게 생산수단의 사회화, 분배를 통한 복지국가의 수립, 평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생산수단의 공유와 통제는 사회주의의 근간이 되는 원리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경제체제의 문제점이 사유재산제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이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국유이다. 물론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국가들에서는 주요 생산수단의 사회화 수단으로서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공산주의국가에서 기업들의 국유화로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성장이나 경쟁, 생산이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다. 사회주의에 있어서 성장과 생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회에서 생산되는 재화의 분배를 통한 복지국가의 수립이다.

 

마지막으로 평등 개념은 사회주의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개념이다. 사회주의의 특징인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복지국가는 반드시 구조적으로 관련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회가 대부분 또는 주요 생산수단을 사회화 하고도 복지국가를 건설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평등은 사회주의에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은 유사 이래 인간을 얽매였던 물질적 속박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려는 목표이다. 만일 자유민주주의가 개인의 정치적 평등을 의미한다면 사회주의는 경제적 평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자율적인 시장기능보다는 자원의 최적분배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불가피해진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양립한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는 경제적으로 개인의 존엄성을 지향하는 것이며,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 개인의 존엄성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회주의자들의 기본적 관심은 개인의 이기적 욕망추구 대신 공동체의 필요와 권리를 강조하고 나아가 협동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이기주의의 추구보다는 동료애, 단결, 동정 등을 실현하는 것이 사회주의적 전통의 기본적이고 영속적인 특징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주의는 평등지향, 공익추구, 협력강화,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부와 계급의 차등을 인정하는 자본주의와 달리 부를 균분하고 계급을 타파할 것을 주장하는 평등 지향 정신은 사회주의가 지닌 장점이다. 자본주의에서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강자를 위한 논리가 지배적이다. 자본주의는 자본가를 사회의 주역으로 인식하여 모든 시책을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데 반해, 사회주의는 약자인 노동자와 농민, , 무산 계급을 사회의 주인으로 간주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체제를 이끌어간다.

 

이러한 사회주의 운동은 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합법적이고 점진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가 생각해낸 공산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정통적인 국가나 민주적 통치기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사유재산제도를 폭력혁명에 의해 일시에 없애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서, 사회주의는 사유재산제도가 인간을 사악하게 하는 근원이라 하여 이를 폐지해야한다는 면에서는 공산주의와 비슷하나, 이러한 사회주의 개혁을 민주주의적 절차, 특히 의회민주주의를 통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공산주의의 과격사상과 다른 것이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이 흔히 사용하고 있는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회주의라는 말과는 그 뜻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며, 마르크스 이전부터 있어왔던 원래의 사회주의 사상과도 구별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의하면 자본주의가 멸망하고 공산주의 단계에 들어가기 전의 과도적 단계가 사회주의, 즉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가 사회주의이다.

 

과거 소련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붉은 혁명을 완수하고 수십년이 지난 뒤에도 자신들은 공산주의 국가로 부르지 못하고 사회주의 국가로 칭해 온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공산주의로 가는 과도기에는 노동계급, 즉 프롤레타리아독재가 필요하며 폭력혁명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로 존재했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스미스(Adam Smith)의 지적처럼 개인의 이익(self-interest)’추구가 동력인 자본주의를 배격하고, 자본가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 투쟁심을 그 밑바닥에 깔고 이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 이론의 내재적 오류와 결함

 

유물론과 인간 소외

청년기 마르크스의 철학적 주제는 인간주의적 측면을 강조한 소외(alienation)’ 였다. 소외문제 연구가로서도 유명했던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견해에 따르면 소외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자기 자신의 행위의 창조자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상으로 종속되는 것을 말한다.(E. Fromm, The Sane Society, New York: Rinehart & Winston, Inc., 1955, p.120.)

 

마르크스는 물질이 모든 변화의 기초이며, 역사발전의 원동력도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물질로 보았다. 이는 우주와 인생의 근본은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이 1차적이고 정신이 2차적이라는 유물론에 입각, 우주와 인생의 일체 현상은 물질변화의 결과이며 물질을 떠나서는 우주와 인생이 존재할 수 없다고 간주한다. 이와 함께 물질을 역사의 중심으로 보는 유물사관(唯物史觀, the materialistic conception of history)의 논리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및 지위를 완전 부정했다. 자연-사회-유 등의 발전을 물질의 운동-대립으로 설명하는 방법이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 materialistic dialectic)이다.

 

물질이 인간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생활이 전적으로 물질에만 의존하는 것은 결코 아닌 데도 말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물질을 제1의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역사의 중심에 올려놓고 인간을 물질에 의해 결정되고 지배되는 제2의적인 존재로 생각하여 역사의 중심에서 끌어내려 비하하고 소외시킨 것은 사회주의가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결함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에 있어서 소외는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인간이 완전한 존재로 발현할 수 없다는 점이 강조된다. 소외의 기본적 형태는 소외된 노동에서 나온다. 노동자는 자신의 일부인 힘과 노력과 기술과 시간을 팔아 생명을 유지하므로, 소유에서 소외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소외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역사와 세계, 사회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지닌 의지와 창조성과 노력이 무시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폭력혁명과 전쟁의 정당화

마르크스는 역사는 부단한 계급투쟁을 통해서 끊임없는 진전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즉 그는 인류의 역사를 부르주아(유산계급)와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간의 투쟁의 역사로 보았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최후에 노동자의 통치를 이룩하려면 반드시 적당한 시기에 폭력에 호소해야한다면서,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폭력혁명을 지지하고 정당화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사회 진화의 한 변칙적 현상, 부수적 요인에 불과한 원인을 투쟁이라는 한 방법으로 개괄하여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했다는 것은 커다란 결함이 아닐 수 없다.

 

마르크스에 있어서 자본은 곧 폭력(Gewalt)으로 정의되는 권력(Macht)의 근원이다. 그에게 있어서 ‘Gewalt’‘Macht’로 나타난다. ‘Gewalt’‘Macht’를 바탕으로 한 권력지향적인 폭력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가권력은 정치적인 폭력이다. 그리고 경제적 폭력인 자본이 국가권력의 실체이기 때문에 자본이 ‘Macht=Gewalt’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에는 폭력혁명이 공공연하게 선언돼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폭력이 아닌 민주적 방법에 의해서 프롤레타리아의 지위가 개선될 수 있다는 전제를 전면 부정한다. 오직 사회 개선 혹은 사회 구성원의 지위 개선은 폭력으로서만 가능하다는 의식을 가짐으로써 오히려 더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폭력혁명을 선동하고 합리화 하기위해 그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질량호변(質量互變)의 법칙, 모순통일(矛盾統一)의 법칙, 부정(否定)의 부정 법칙 등을 내세우고 있다. 질량호변의 법칙이란 사물의 변화를 양과 질의 끊임없는 상호변화로 설명한다. 이는 사물의 변동방식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모순통일의 법칙이란 사물의 변화가 발생하는 까닭은 모든 사물이 모순통일체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 어떤 사물을 막론하고 모두 두개의 모순성의 인소(因素)가 조합해 이뤄지고 있는 데 다만 두 모순성의 인소가 함께 결합을 유지하는 것은 잠시이고 그것들 사이의 모순과 투쟁은 절대적인 것으로서 모든 사물의 발전과 변화는 바로 이러한 내재적 모순의 투쟁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사물의 변동원인을 설명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부정의 부정 법칙은 사물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대체적으로 새로운 모순에 의해 과거 모순이 부정되어 새로운 사물이 발생하게 되고, 새로운 사물은 또 더욱 새로운 모순으로부터 부정을 당하여 더욱 새로운 사물로 발생하게 되는 등 사물발생의 전과정이 이와 같이 부정에서 부정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사물변동의 전과정을 설명하려는 데 그 의도가 있다. 예컨대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안고 있는 모순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무덤을 파게되어 새로운 공산주의 사회가 온다는 변증법적 역사발전이 그것이다.

 

한편 마르크스는 전쟁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이를 강화하며 확대하기 위해 행해지는 사회집단 상호간의 무력 투쟁이라고 정의했다. 즉 생산수단의 소유를 위한 수단과 방법 및 행위가 전쟁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의 주장은 계급투쟁에서 역사에는 유일하게 항구적인 투쟁만이 존재하는데, 그 투쟁이란 바로 가난한 자의 가진 자에 대한 투쟁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이를 성실히 수행하면 사회혁명이 일어나고 이것이 전쟁으로 발전한다고 정의했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일어나는 전쟁에는 반대하나,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해방전쟁에는 찬성한다며 전쟁에 대한 이론을 전개시켰다. 이 같은 공산주의의 폭력혁명 이론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해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를 이념 전쟁의 회오리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의 공산화, 6&#8228;25 전쟁, 베트남전쟁, 캄보디아 내전에 따른 폴 포트의 대학살(The Killing Field)등이다.

 

지난 1997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공산주의 흑서(黑書)’(The Black Book of Communism - Crimes Terror Repression)의 통계에 의하면 숙청, 집단처형, 집단 강제 이주, 정부가 만든 대기근 등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로부터 죽임을 당한 사람이 약1억 명으로 나타나 있다. 히틀러의 나치 독재에 의한 피살자는 약2500만 명. 공산주의의 인간 말살이 히틀러의 네 배나 된다.

 

실제 옛 소련 내무 인민위원회 위원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에조프(Nikolai Ivanovich Ezhov)가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에게 바친 사형자 명단은 책으로 383권인데 모두 4500만명이 넘는 인원을 죽인 것으로 돼있다. 스탈린은 혁명에 방해가 되는 대상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자비한 처형을 단행했다. 그는 에조프를 내무 인민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하고 1936-1938년 제일 큰 위협인 군대를 제거했다.

 

경쟁의 배제와 능률성 저하

사회주의는 지나치게 인간의 본능적 자연성을 배제하고 사회성을 강조하며 개인 욕구 충족을 억제하고 사회욕구 충족을 지향하기 때문에 효율이나 능률이 향상되지 않는다. 개인욕구 충족을 위한 경쟁이 과열되어 악성 경쟁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인간사회에서 선의의 경쟁마저 포기하도록 만든다면 사회의 비능률화를 막을 길이 없다. 따라서 매사에 효율성이 극대화되지 못하고 극도로 저하되어 그것이 결과적으로 경제의 부진으로 연결되는 것이 사회주의의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적 역량인 정신 의식 심리활동의 결여: 저성장 저생산의 요인

사회주의 이론에서는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고 하여 물질적 생산과 노동적 가치만이 중시되고 인간의 창조적 역량이 기초가 되는 정신, 의식, 심리활동 등은 경시된다. 또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계획 경제에 의한 중앙통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인이나 기업은 단지 상부에서 지시된 목표량을 달성하기만 하면 되고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하여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생산할 필요성이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인간 의식의 경시와 계획 경제의 실시로 인한 창의성 결여는 사회주의의 큰 결함이 되며 이것은 사회주의의 또 다른 결함인 비효율성과 함께 사회주의 저성장, 저질생산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개인의 자유침해: 통제된 틀속의 규격화된 삶

사람은 누구나 자유스러운 개인 생활을 갖기 원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충분한 자유를 보장받기가 힘들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사람을 자유로운 경제활동, 자유로운 정치활동, 자유로운 사회활동의 주체로서 살기보다는 통제된 틀 속에서 규격화된 삶을 영위하게 만든다. 개인의 욕구를 극도로 개방하여 사회적 문란과 퇴폐행위를 조장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사회적 욕구를 극도로 확대하여 그 충족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사회주의는 계획 경제의 실현과 사회적 욕구충족이라는 명목 아래 개인의 신성한 자유를 제한하고 침해할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단점으로 지목된다.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에 대한 비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요구)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는 불가능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 이후의 완성태의 공산주의 사회 정치형태는 국가소멸과 함께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체속에서 인민의 직접적인 자기통치가 구현되는 사회이다. 이 시기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요구)에 따라 분배한다는 공산주의적 원리가 구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기가 일하고 싶은 대로만 일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자는 원하는 대로 가져갈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슬로건은 그 자체가 반인간적(反人間的)이다.

 

예컨대 감 10개가 달린 감나무가 있다고 치자. <>이라는 사람은 키가 크고 팔이 길어 열심히 10개를 땄고 <>이라는 사람은 나무그늘에 않자 콧노래만 부르다가 노래를 불러주는 노동을 했으니(능력에 따라 일했으니) <> 네가 딴 것 중 5개를 노래 값으로 내 놓아라한다든지 또는 요구에 따라 분배한다고 했으니 나는 노래를 불러 배가 고파 10개를 몽땅 먹어야겠으니 다 내 놓아라고 한다면 이것이 과연 정당하며 인간의 본성에 맞는 일인가?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는 제한된 자원밖에 없어 인류가 아무리 아껴 써도 다 써서 없어질 날이 오기 마련인데, 이처럼 요구대로 분배한다면 무제한의 인간 욕망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한 자원은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이처럼 마르크스의 이상 세계가 실현되자면 물품의 생산이 무제한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사람이 스스로의 욕망을 적절한 수준에서 참을 줄 알아야하는 즉, 이타적(利他的, altruistic) 인간이 되어야 할 것 등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의 세계가 아닌 공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할지 모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또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의 질적 차이가 없어지고 노동이 제일 큰 인간 욕구가 된다고 주장한다. 세상에 과연 모든 욕구에 앞서 노동하고 싶어 죽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가?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개혁할 수 없는 사악한 사회 형태이기 때문에 반드시 종식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으며, 공산주의에 의해 타도, 전복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 후에 지상에 유토피아(utopia)적인 완전히 멋진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계급투쟁론의 허구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선언에서 밝힌 공산주의 혁명사상의 기초는 계급투쟁의 역사관이다. 부르주아 계급과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서로 적대관계 속에서 투쟁을 벌인다는 것이 계급투쟁론이다. 선언문에서는 지금까지 역사를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투쟁의 역사로 가정하고 현대 산업사회가 낳은 부르주아 계급이 그 존재 자체의 모순점으로 낳은 프롤레타리아 계급과의 투쟁으로 부르주아의 멸망과 함께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것이라 했다. 하지만 과연 인류역사가 계급투쟁의 역사였을까?

 

이를테면 중세에서의 교황과 황제간의 권력투쟁이나 십자군전쟁, 나폴레옹전쟁, 몽고제국전쟁 등이 모두 계급투쟁의 변형태라 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마르크스가 말한 피억압자들에 의해 역사적 변혁을 이룬 실례는 있다. 하지만 역사 전체가 투쟁의 역사는 아니었다. 때론 공동이익을 위해 협력하거나, 위기에 상호 협력으로 대처하는 역사적 사건들이 오히려 무수히 많았다. 즉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에 있어서 화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사회는 상호협력, 화해로 발전한다. 악명 높은 계급투쟁의 격화이론은 사실에 입각한 논리, 건전한 사고를 압살했다. 계급적인 혁명에 의한 방법으로, 패자에 대한 승자의 물리적인 압박과 파괴의 방법으로 어떤 한 사회가 질적으로 다른 사회로 이행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 전체를 이처럼 계급이익을 둘러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투쟁사로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계급론은 오늘날 어느 사회에서든 일반화되어 있는 거대한 중간계급, 이른바 화이트칼라 계층의 존재를 예측하지 못한 치명적 약점을 드러냈다. 이로 말미암아,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계급 양분화가 더욱 진전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세워진 혁명이론과 전위당 이론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및 공산당이론의 허구성은 기존 공산주의 국가들의 실상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소수의 당간부와 권력기관 관료들은 바로 공산주의 사회에서 생겨난 신흥계급, 새로운 착취계급이 아니고 무엇인가?

 

노동계급 주체의 문제점

전 소련 공산당중앙위원회 이념담당 비서였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시절 정치국원을 지내면서 개혁과 개방을 주도했던 야코블레프(Alexander Nikolaevich Yakovlev)1991년 펴낸 <공산주의의 종언(USSR the Decisive Years, First Glance Books, 1991)>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모순적 결함을 지적하면서 노동계급이 인류의 운명을 구출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노동계급이야말로 사회적 이성이며 현대사회의 심장이라는 마르크스의 기본 테제는 합리적이고 경험주의적인 근거를 지니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혁명이 약속한 노동해방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노동은 더욱 강제적인 것, 농노제적인 것이 되었으며, 사유재산과 생산으로부터의 노동자의 소외는 무조건적이었다면서 노동계급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공산당에서는 또 다른 부르주아 계급들을 생성한다. 공산당선언문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목표로 프롤레타리아를 계급으로 형성시키고 프롤레타리아 손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프롤레타리아의 손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한 후에 또 다른 지배 권력이 부르주아화하고 결국은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의 구도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지배가 아닌 소수 계층의 독재 권력이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가치설의 오류

모든 상품 가치의 실체와 근거는 인간노동이며, 상품 가치의 대소는 인간이 쏟아 넣은 노동력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주장으로 마르크스 경제이론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 사실 마르크스의 이러한 이론은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 등 앞선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승계한 것이다. 여기에 이익을 붙이면 그 이익은 자본가에게 돌아가고 그 이익이 바로 착취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것이 성립하기위해서는 모든 노동이 똑같은 질을 가져야 하며 모든 상품이 노동만으로 생산돼야 하기 때문에 과학적인 타당성이 없다.

 

예컨대 자전거 한대를 하루에 만들 수 있다면, 그 자전거의 값은 하루 노동력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가가 자전거 한대를 만드는데 드는 노동력만을 기준해서 값을 매겨 팔면 착취가 없어진다고 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후속 생산은 어떻게 되고 기계와 시설의 손실은 무엇으로 보충할 것인가?

 

또한 인간의 노동력은 하는 일에 따라 그 가치비중이 달라지는 법이다. 예를 들면 돌부처를 만드는 석물공장에서는 노동력의 비중이 크다. 그러나 현대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자본, 기술, 시설, 지식정보 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노동력의 비중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이런 첨단산업 분야에서 어떻게 원시적인 노동력의 크기만을 상품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로 볼 수 있겠는가?

 

또한 노동의 양과 질은 아무리 과학적인 계산을 적용한다고 해도 그 절대적 크기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예컨대 같은 땅을 파도 금광을 찾는 노동자는 땅을 얼마만큼 팠느냐에 따라 노동의 질과 양이 결정되는 것 아니라, 금이 묻혀있는 광맥을 찾았느냐의 여부와 금광석의 생산량에 따라 노동의 양과 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페인트공은 하루면 작업을 완료할 수 있으나 불치병을 연구하는 의학자는 몇 년, 몇십년 후에 가서 결론이 날지 모른다. 의학자에게 당장 성과가 없다고 하여 누구에게나 주는 일당만 줄 수 없지 않는가? 이처럼 오류가 많은 노동가치설을 공산주의자들이 아직도 고집하는 것은 노동만이 유일한 가치의 생산수단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노동의 결과로 생산되는 물품의 값어치에 해당하는 전액을 임금으로 돌려주지 않는 자본가에게 맞서 투쟁하기 위한 것이다.

 

잉여가치설의 문제점: 이윤을 내면 망하는 것이 공산주의 경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자본(capital)이 계속적으로 이윤을 남기며 자신을 재생산하는 배후에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숨어 있다고 보았다. 자본주의적 생산에 있어서 자본가는 우선 화폐자본을 가지고 시장에 가 생산에 필요한 요소, 즉 생산수단(토지, 건물, 기계, 원료 등) 과 노동력을 구매한다. 그 다음 이들 두 요소를 결합하여 상품을 생산하고 이렇게 생산된 상품을 다시 시장에 내다 팔아 화폐자본을 회수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가가 생산한 상품의 총가치는 생산수단비 + 노동자의 임금 + 이윤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생산수단은 생산과정 중에 소모됨에 따라 감가상각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량을 새로운 생산물에 이전하는 데 불과하다. 그러나 노동량은 이와 전혀 다르다.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다른 상품과 달리 그 사용가치가 곧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창조적 활동에 있다. 따라서 그것은 자신의 가치 크기를 초과하는 가치량을 생산할 수 있다. 이 독특한 상품 덕분에 자본가는 노동자를 고용할 때 노동력의 가치를 임금형태로 지불하지만, 실제로 그 사용가치를 이용하여 임금 크기보다 더 많은 양의 가치를 생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임금에 상당하는 가치를 생산하는 부분을 필요노동이라 부르고, 이 필요노동을 초과하는 노동, 즉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불되지 않는 노동에 의해 생산된 가치를 잉여가치(surplus value)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자본활동에서 얻어지는 이윤의 정체는 바로 이 잉여가치다. 즉 이윤은 노동자의 노동력에 의해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에게 환원되지 않고 자본가가 자신의 자본축적을 위해 빼 앗는 부분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생산의 직접적 목적이자 결정적 동기는 이윤 산출, 곧 잉여가치의 착취이다.

 

시장(市場)이 있으면 안되는 경제가 공산주의 경제

생산활동을 잘해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 생산수단(토지, 공장, 기계, 원재료 등의 경제 자원)을 마음껏 소유, 이용, 처분할 수 있는 권리, 즉 사유재산권을 철저히 누릴 수 있어야 하는 데도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것을 잘 몰랐다. 공산주의 경제는 시장이 있으면 안 되는 경제이고 자본주의 경제는 시장이 없으면 안 되는 경제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시장이 안 돌아가면 침몰할 수밖에 없다. 상품뿐 아니라 노동, 자본, 토지, 나아가 회사 그 자체도 시장에서 팔고 살 수 있는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다. 공산주의는 모든 국민을 거지로 만드는 사회다. 거지란 사유재산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가진 재산을 모두 빼앗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으니 국민을 거지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

 

공산주의 최후단계: -경찰-군대와 국가조차 소멸되고 없는 사회

한편 국가를 계급지배의 도구로서만 보는 마르크스의 국가소멸론 역시 어떤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불변의 일반법칙으로 확대시킨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것은 국가의 역할을 법과 질서의 유지에 한정해서 보는 입장에서는 성립 가능한 논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의 기능과 역할이 다변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적용 가능성이 전혀 없는 논리다. 왜냐하면 복지국가의 건설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법과 질서유지라는 기능 이외에도 국민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사회복지정책을 수행하는 기능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에 기초하지 않은 획일주의적 공산사회야말로 체제유지를 위해 강력한 국가적 차원의 통제를 발휘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공산주의 사회, 정치이론은 여러모로 그 이론적, 현실적 타당성을 완전히 잃었다고 결론내리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는 악이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의 착취를 위해 존재하는 억압기구일 뿐이라는 이론으로 법을 파악한다. 이들은 법을 국가가 그 억압기능을 수행하기위해 가지고 있는 무기로 간주한다. , ‘국가=이라는 관념아래 이러한 억압기구로서의 국가가 내세우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가 법이라면서 부르주아 집행위원회로서의 국가가 그의 억압기능을 다하기 위해 자유, 평등, 법적 안전성 또는 법적 합목적성 등과 같은 테두리를 정해놓고 이 테두리를 질서, 즉 법이라고 표현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공산주의자들은 국가란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자기 재산을 지키고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로서 모든 악의 원천이라면서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이는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엥겔스에 의하면 국가는 폐지(abgeshafft werden, abolished)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고사(absterben, wither away)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며 폭력혁명을 통해 국가를 파괴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사멸하고 만다는 것이다.

 

국가란 인류 공동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복지향상을 위해 필요한 기구다. 특히 공공복리를 증진시켜 나가는 조정 및 보호기구로서의 현대국가의 역할은 막대하다. 만약 국가가 없다면 사회의 안녕질서는 하루아침에 파괴되고,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국가가 자본가들의 이익보호를 위해 만들어 진 것이니 하루속히 없어져야 한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왜 국가를 소멸시키지 않고 있느냐는 질문에 자본주의 국가들이 전쟁을 걸어오면 이를 물리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오히려 국가권력을 강화해왔다. 이러한 국가 소멸론은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기만 하면 이 땅에 지상낙원이 도래한다며 대중을 선동하고 현혹시키는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론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이들의 후계자인 레닌 등은 자본주의 체제가 혁명적으로 전복된 뒤에도 국가형태가 즉시 소멸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러한 소멸은 고도의 사회주의 발전단계에 이르러서야 실현될 것이고 그 전까지는 여전히 국가기구에 버금가는 정부형태가 존속해야 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사회의 낡은 생산관계는 일시에 새로운 형태로 바뀌는 것이 아닐 뿐더러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계급이 부단히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되찾으려는 각종 기도를 감행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닌의 말을 빌자면, “전복된 착취계급의 반항을 진압하며 외래 제국주의 침략세력으로부터 혁명의 성과를 수호하는 혁명적 폭력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즉 제국주의 세력의 출현 때문에 공산주의로 가는 길을 앞당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도기적 사회주의 정부형태, 즉 공산주의 전단계를 공산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부르고 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에서 1871년에 일어난 파리코뮨을 그 모델로 보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본질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정부이며, 소유계급에 대한 생산계급의 투쟁의 소산이자 노동자의 경제적 해방을 달성할 수 있는 마지막 정치형태라고 쓰고 있다.

 

실패한 이데올로기로서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볼셰비키혁명과 마르크스-레닌주의

마르크스주의 실천적 이데올로기로서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1917117일 레닌에 의한 볼셰비키(Bolsheviki)혁명 즉, ‘10월 혁명으로 구체화된다. 여기서 ‘11월 혁명이라하지 않고 ‘10월 혁명으로 부르는 것은 러시아 구력(舊曆)으로 혁명이 1025일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수정주의적 해석을 모두 거부하고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 러시아 혁명사상을 융합시킴으로써 마르크스주의를 러시아의 후진적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혁명이데올로기로 전환시켰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로부터는 변증법적 유물론, 계급투쟁, 프롤레타리아의 메시아적 사명 등을 계승했고, 여기에 혁명적 당이론, 농민중시사상, 직업혁명가의 엘리트주의 등을 가미시켰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실천을 위한 이론적 근거로 자본주의의 종말과 공산주의사회의 도래에 대한 신념을 확고히 했을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전략 전술적 측면에 착안하여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모형 자체를 보완했다. 레닌에 있어서 계급투쟁은 전 세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거대한 과제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당시의 사회 경제적 상황이 어찌되었든 국제자본주의 체계를 타도하려는 세계혁명의 출발로 부각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가 현실사회주의 정치체제로 형상화된 것은 볼셰비키혁명이 성공함으로써 비롯되었으며, 이 같은 사회주의는 조금씩 유형을 달리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동구와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지구상의 모든 대륙에 검버섯처럼 전염됐다.

 

소련과 동구(東歐) 사회주의의 체제 붕괴 원인

그러나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동독의 서독으로의 흡수통합, 그리고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해체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연구하는 학문의 분야에서 큰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20세기 최대 역사적인 사건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 소련의 해체는 과거 역사에서 볼 수 있던 한 국가 또는 왕조의 생성 및 소멸 과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소련은 외세의 침략 즉, 전쟁에 의해 몰락한 것도 아니고, 내부 민중봉기나 반란 또는 혁명에 의해 붕괴된 것도 아니다. 핵으로 무장한 냉전시대 초강대국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스스로의 붕괴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볼셰비키혁명으로 출범한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공식명칭: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USSR,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1991819일 연방을 유지하려했던 보수파의 쿠데타가 3일 천하로 실패한 직후인 824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공산당 해체선언을 계기로 그해 12월 막을 내렸다. 고르바초프는 1225일 대통령직 사임을 공식 발표했으며 이어 26일에는 크렘린에 붉은기가 내려졌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74, 소비에트 연방 창설 후 69년동안 지속돼 온 소련이 해체된 것이다. 이제 소련이라고 하는 거대한 제국은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사회주의가 스스로 천명해온 해방, 평등, 풍요, 정의와 같은 가치체계를 달성하는 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20세기는 정치사상사적 측면에서 볼 때 이념(ideology)의 실험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멸망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계급 없는 사회의 도래를 역사의 필연이라고 주창해오던 사회주의라는 거대한 이념이 거의 한 세기 가깝게 무모한 실험을 거듭한 끝에 주저앉고 말았다.

 

1980년대 말부터 진행된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독일의 통일, 소련의 해체는 그 실험의 실패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말았다. 생산수단을 사회가 소유하고 관리해 자본주의가 갖는 모순들 - 자본의 집중에 따른 부의 편중, 노동 착취, 실업과 빈곤의 증가 등 - 을 해결함으로써 인간의 사회-경제적 평등과 삶의 조건 개선 등을 실현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부정적인 기능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존재이유를 주장하던 사회주의가 와해된 것이다. 비록 일부 국가에서 아직도 사회주의 체제가 유지되고 있지만 사회주의 정당의 입지와 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적인 토대가 약화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현실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그 이념이 인간의 본성 또는 인성(人性)에 대한 그릇된 전제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일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유(私有)의 욕망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며, 이 욕망에 의한 동기화 통로가 차단될 때 무기력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또한 자유로운 정신에 의해 움직여질 때만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가 있다. 이러한 인성을 부정하는 사회주의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이미 실패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나 사회주의 체제는 모두 인간을 생산력의 핵심요인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인간의 어떠한 요인이 노동의 동기인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노동 동기를 분석하는데 자극의 수단으로서 사용되는 인센티브(incentives, 유인)는 도덕 규범적 유인과 강제적 유인, 그리고 물질적 유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전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스미스는 바로 인간의 ‘self-interest’가 개인과 사회의 부를 증진시킨다고 보았으며 자본주의는 바로 이러한 물질적 유인의 ‘self-interest’(여기서 ‘self-interest’ 는 한국 문헌들에 이기심으로 번역되고 있으나 이는 이타심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은 의미임. 즉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 돈벌이에 몰두하게 된다는 것임)을 생산의 원동력으로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동인은 사유재산권과 시장이 뒷받침해주는 이윤이 되지만 계급타파를 목적으로 생산수단을 사회화한 사회주의 체제에서 이러한 방법을 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컨대 사회주의체제인 북한에서는 생산력 발전을 추동하는 결정적 요인으로서 인간의 높은 혁명적 열기를 들고 있다. 이것들은 첫째로 타인을 위해 노동한다는 사회주의적 자기헌신성이며, 둘째로 명예이며, 그리고 셋째로 경제활동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기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북한은 사상혁명을 모든 사업에 우선시킨다는 방침아래 소위 주체사상으로 무장하여 각 개인이 자주성과 창조성을 발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현실사회주의 체제의 내재적인 모순이나 비효율, 한계가 스스로 사회주의의 몰락을 초래했다는 지적에는 침묵하면서 현실사회주의가 역사에 검증된 실패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 지도부의 현실사회주의권 실패 원인에 대한 진단은 너무 자의적이며 일방적이다.

 

북한지도부는 사회주의 체제의 근원적인 문제점인 개인의 창의성 및 시장 자동조절기능의 외면 국가 계획경제 체제에 의한 독점적 생산방식 및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 과도한 국방비 지출 관료주의 팽배 및 당과 인민의 괴리 균등분배라는 미명하에 실시된 하향 평준화 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정책, 그리고 이들에게 편승한 사회주의 반동분자들의 배신행위만 공격한다. 결과적으로 경쟁의 배제와 평등주의 노선이 노동 동기 약화, 생산성 저하, 경제침체로 이어지는 등 사회주의 실패의 주원인이 됐는데도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노동자를 위한다는 사회주의가 노동자의 저항에 의해 붕괴된 사실, 그리고 폭력에 의존했던 사회주의가 민중의 자발적인 각성과 평화적 저항 앞에 붕괴된 사실 등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하고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역사적 실험에 대한 평가

소련의 해체에 대해서는 그 충격 못지않게 평가도 엇갈린다. 소련의 와해를 공산주의의 실패-자유민주주의 승리와 함께 이데올로기 대결의 종언으로 말하고 있는 사람(Francis Fukuyama,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 New York: The Free Press, 1992.)들이 있는가 하면 비민주적으로 전개된 볼셰비키적 실천의 좌절을 곧바로 사회주의의 실패로 보는 견해에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즉 소련은 사회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반사회주의적인 형태, 전체주의의 지배를 받았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변질된 사회주의가 붕괴된 것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과연 소련의 정체성(identity)이 존재했었다고 할 수 있는지, 또는 어떠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기에 스스로 붕괴되었는지 커다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는 레닌, 스탈린을 거치면서 현실에 맞게 변용, 또는 왜곡돼 왔다. 이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분파를 만들면서 각각의 정통성을 주장하여 왔던 것이다. 따라서 소련의 붕괴라는 현상과 마르크스주의를 연결하여 보는 관점도 입장에 따라 다양한 견해를 갖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소련은 혁명에 성공했으며 공산주의혁명을 지원한다는 입장에서 자신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성을 유지했다고 주장해 왔고 이는 사실상 혼돈상태였던 고르바초프에게 이어져 왔다.(M. S. Gorbachev, Perestroika: New Thinking for Our Country and the World ,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87, pp. 22-23.) 만일 그들의 논리에 따라 소련이 마르크스주의를 승계한 것이라면 소련의 붕괴는 마르크스주의의 실패로 볼 수도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고르바초프 측에서는 소련의 해체 원인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오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탈린의 오류에 있었던 것이며 따라서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까지 옹호했다.

 

이러한 소련의 입장에 대해 처음부터 소련의 혁명에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던 유로커뮤니즘(Euro-Communism), 그리고 소위 인간적 마르크스주의자’(Humanist Marxism: E. Fromm, Marx's Concept of Man, New York: Frederick Ungar Publishing Co., 1964, pp. 43-58.)들은 애초 소련의 혁명이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벗어난 것이라는 관점에서 마르크스, 엥겔스 나아가 레닌의 원칙은 옳으나 그것을 적용하는 소련과 기타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 원칙으로부터 너무나 벗어났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정당성과 유효성을 변호한다.

 

이와 반면에 소련의 붕괴와 관련된 서방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적인 반응은 소련의 붕괴와 마르크스-엥겔스의 오류를 관련시켜 소련의 붕괴는 곧 마르크스주의의 오류 또는 붕괴와 일치시키려 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으로서는 미국의 신보수주의자(neoconservatist)로 존스 홉킨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인 일본계 미국인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를 들 수 있는데 그는 1989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몰락과 자유주의의 정치경제적 승리를 점쳤다.

 

이밖에도 미국의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좌파 경제학자인 헤일브로너(Robert Heilbroner)1989123일 뉴요커(New Yorker)지 기고문 자본주의의 승리’(The Triumph of Capitalism)를 통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공식적으로 대결한 지 75년도 채 되지 않아 게임은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났다.”고 선언했으며 카터행정부 때 안보담당특별보좌관을 지낸 국제정치학자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1989거대한 실패’(The Grand Failure-The Birth and Death of Communism in the Twentieth Century, New York: Charls Scribner’s Sons, 1989.)에서 사회주의의 붕괴를 예언함으로서 사회주의의 패배를 선언한 바 있다.

 

이밖에 미 워싱턴대 국제정치학교수 치롯(Daniel Chirot)레닌주의의 위기와 좌파의 몰락’(The Crisis of Leninism and the Decline of the Left: The Revolutions of 1989)에서 러시아 공산주의의 종말을 선언했다. 이에 앞서 자유 시장경제 옹호자로 계획경제와 정부개입에 반대해온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1899-1992)1944년에 펴낸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에서 사회주의는 억압과 노예상태의 평등을 추구한다며 사회주의의 몰락을 예언한 바 있다.

 

야코블레프는 그의 공산주의의 종언에서 공산주의 실험의 환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나는 48년간 공산당원으로 있었다. 수백만의 우리 동포와 마찬가지로 나는 정직한 의도에서 공산당 사업의 성스러움을 굳게 믿고 공산주의자의 대열에 참여하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 평등·자유·사회정의의 이상(理想), 근로인간에 대한 존경 - 모든 것들이 가짜임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20세기 사회주의 실험의 희망과 환상으로부터 국민의 운명이 얼마나 깊은 나락에 떨어져 있는가를 알게 되기까지에 이르는 길은 고통스러웠고, 성실하게 믿고, 성실하게 기대하고, 성실하나 틀리게 생각하고 판단한 사람들에게는 특히 고통스럽고 모순적이었다 .

당 지도부의 책임 있는 자리에서 일하면서 도덕적인 통찰을 해본 결과, 나는 수단이 목적과 모순이 생기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며, 그래서 이상(理想)은 진흙탕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오늘날 명백해진 것은 강제로 국민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범죄라는 점이다

 

경영학의 귀재라는 드러커(Peter F. Drucker)도 공산주의는 경제적 평등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미증유의 경제적 특권을 누리는 각종의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 옛 소련의 특권계급)를 양산했다면서 이에 따라 부패, 탐욕, 권력욕, 질투와 상호불신, 독재와 음모, 거짓말, 도둑질, 고발, 그리고 무엇보다도 냉소가 만연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3의 길’(The Third Way: The Renewal of Social Democracy)의 저자 기든스(Anthony Giddens)1998년 중반 서유럽의 영국·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그리스 및 스칸디나비아 여러 국가들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또는 중도좌파 연합이 집권하고 있었으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대체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스스로 규정하고 있었으며, 공산주의는 서방에서 완전히 실패했고 사회주의는 전반적으로 해체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에 있어서는 사회주의는 거의 한 세기 가깝게 무모한 실험 끝에 주저앉은 하나의 눈먼 이념에 불과했다.

 

이제 사회주의는 더 이상 가능한 정치적 대안이 아닌 역사적 현상이 되었다.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패배했을 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도 실패하고 말았다.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체제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으며 폭력으로도 체제의 유지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사회주의의 실패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징후는 서구에서의 전통적인 사회주의도 퇴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구와 소련 공산체제가 붕괴되기 이전 이미 서구 사회주의 정당들은 지지기반, 조직, 정책적인 면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이는 70여년에 걸친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이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노동을 계급투쟁의 시각에서 바라보며 파업과 태업을 방관하는 포퓰리즘(populism) 사회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돈벌이에 몰두하게 된다는 인간의 ‘self-interest’적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허상이야 말로 사회주의 몰락의 또 하나의 원인이다. 사회주의의 이상은 완전한 사회주의적 인간(이타적 인간)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현실사회주의의 본래적 모순은 인간을 사회주의적 인간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단순한 맹신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주의 이론가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창조적으로 탐구하지 않는 한, 현실사회주의는 역사의 유물로 전락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자체도 실천적 함의를 상실한 채 화석화(fossilization)할 것이다.

 

하이에크는 198911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것을 병상(病床)에서 아들과 함께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뭐랬어.” 하이에크는 1944년에 출간된 저서 노예로 가는 길에서 사회주의는 반드시 망하게 된다고 예고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회주의는 70여 년의 실험끝에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 지구상에서 경제적으로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뿐이다.

 

마르크스는 181855일 태어나 1883314일 사망했다. 살아있다면 2018년 현재 200세다. 그가 부활해 노숙자로 현대를 살아간다면 어떤 일기를 쓸까. 오스트리아의 동명이인 소설가가 그 가상일기를 소재로 2003자본론범죄’(Das Kapitalverbrechen)라는 추리소설을 썼다. 이 소설에서 환생한 마르크스는 독일 뮌헨 거리를 헤매는 노숙자가 되어 문자 그대로 룸펜 프롤레타리아적인 삶을 만끽한다. 마르크스는 소설에서 신적(神的) 존재가 될 수 있었는데 공산혁명의 결과로 낙원이 도래한다고 입방정을 떠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자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과학적 진리라던 예언적 역사관과 경제 결정론의 실수를 인정한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산업국가인 러시아에서 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는가에 대해 마르크스가 살아있다면 무엇이라고 답변할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로의 전환 혁명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았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라면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성숙한 자본주의국가에서 혁명이 일어나야 당연하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은 후진 농업국인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혁명 직후에도 강력한 자본주의국가들로 둘러싸인 일국 사회주의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일당독재가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이라는 유토피아(utopia)를 달성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학자들의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소련은 유토피아 달성을 위한 과제들을 과학적으로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었으며 자국의 안전을 외교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세계 공산주의운동을 이용했다.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사실상 디스토피아(dystopia)였다. 물론 지난 70여년간 사회주의 국가들은 경제를 계획적으로 운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를 개선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그러나 소련식 사회주의는 결코 자본주의 이후의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마르크스 유령은 한국에서 환생하는가?

영국의 BBC 라디오가 지난 2005년 청취자를 대상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조사한 결과 마르크스는 27.9%를 얻어 흄(David Hume, 12.7%)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6.8%)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6.5%)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조사결과에 대해 좌파 진보학자들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은 몰락했지만 마르크스이론이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문제 설명에 유효하다는 증거라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세계의 역사 연호는 예수탄생을 기점으로 하는 B.C.(기원전, Before Christ)A.D.(기원후, Anno Domini)를 쓰고 있다. 예수는 인류의 역사에도, 개인 개인에게도 B.CA.D.가 된다 예수가 역사의 중심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예수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는 마르크스 탄생 전과 후로 나뉠지 모른다.

 

20071월 영국 국방부가 2035년의 세계를 예측해 펴낸 미래전략환경전망보고서에서는 마르크스의 부활 가능성이 예고됐다. “증산층과 슈퍼리치(super rich, 초부유층)간의 경제격차가 커지면서 중산층이 도시빈민층과 연대해 계급혁명의 주도세력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도덕적 상대주의와 실용적 가치가 팽배해지면서 대중이 마르크스주의 같은 교조적 이념에 더욱 빠지기 쉬울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 한국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을 보면 실패한 이데올로기인 사회주의가 환생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문재인 정부는 지금 헌법 개정을 통해 우리 헌법의 골간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민주적 기본질서로 바꾸려하고 있다. 좌파인사들이 주축이 돼 만든 교과서 시안에서도 자유민주주의민주주의로 변경돼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헌법전문(前文)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은 삭제하되 헌법 제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그대로 존속키로 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서옥식 박사는 자문위의 개헌시안이 헌법 제4조에서 현행대로 자유라는 글자를 유지키로 했지만 헌법 전문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을 완수한다는 내용을 삭제하고 대신 <평등한 민주사회의 실현을 기본 사명으로 삼는다> <연대의 원리를 사회생활에서 실천한다>라는 내용이 삽입됐다고 지적하고 자유민주를 삭제하고 평등한 민주로 대체한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사회민주주의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의 전단계로서의 인민민주주의(people's democracy)를 염두에 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민주민주로 변경해야 한다는 것은 자유라는 근본규범을 삭제해 대한민국의 헌정적 정당성도 바꿀 수 있는 위험하고 혁명적인 발상이라며 문재인 정권이 개헌으로 헌법 개정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를 변경하는 헌법 제정을 시도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서 박사는 자유민주평등민주로 바꾼 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인 김일성-김정일 헌법과 유사성이 있다면서 북한 헌법 제5, 64, 67조 규정을 예로 들었다. 그는 또 연대(Solidarite)의 원리라는 단어는 프롤레타리아트(무산계급)가 연대투쟁을 통해 사회주의혁명을 이룩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자주 사용된다는 점도 주목해야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과 대통령 당선이후 특히 사람중심의 사회와 경제를 주창함으로써 북한의 통치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을 연상케 한 것이 사실이다. 친문(親文)인사 주도의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 개헌권고안도 현행헌법의 여러 조항에서 국민사람으로 변경함으로써 북한 헌법 제 3조와 8조에 명기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주체사상의 개념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개헌특위 자문위의 헌법시안은 사람 중심의 경제를 표방하면서 노조의 경영참여 비정규직 폐지 노동자 해고의 원칙적 금지및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지급 기간제·파견근로 금지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노동자·노조 중심의 경제를 보장하고 있는 데 이러한 개헌 추진은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사회주의 계획경제 보다도 더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한 전체주의 명령경제체제로의 변경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경제는 경제원리로 움직이도록 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시장경제를 경시하고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너무 강조한다. 개헌권고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노동이란 단어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0개월이 되지만 경제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설비 투자는 전 분기 대비 -3.1%로 돌아섰고 제조업 가동률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71.9%를 기록했다. ‘1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은 9.2%1999(10.3%) 이후 18년 만에 최고치다. 청년층 체감 실업률 역시 사상 최악인 21.6%. 지난해 말 기준 세계 각국의 실업률을 보면 미국 4.3%, 독일 3.9%, 싱가포르 2.1%, 뉴질랜드 5.2% 등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J노믹스는 평등주의에 함몰돼 있다. 그러다 보니 경제정책에 시장과 성장이 보이지 않는다. 시장과 성장 대신 그 자리를 국가 개입주의분배가 차지하고 있다. 시장은 부가가치가 생성되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기회의 바다이지만 문재인 정부에 비친 시장은 약육강식의 정글일 뿐이다. 인간의 생활방식인 시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겐 이데올로기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체가 감당할 수 없는 최저 임금 대폭 인상 재원확보 대책이 없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밀어붙이기 노조공화국, 노치(勞治)라 할 정도의 반기업-친노조 정책 퍼주기 복지로 인한 SOC예산 삭감 등은 인기영합의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지금 전 세계의 흐름은 작은 정부인데도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요체는 큰 정부라는 점이다. 정부가 소득 재분배와 양극화 해소를 위해 경제를 시장과 민간의 자율에 맡기기 보다는 사사건전 개입하고 관여하겠다는 것이다. 공적 분야에서 81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대표적인 큰 정부 정책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지지층의 이탈을 감수하면서도 공무원 12만 감축을 선언했다. 영국도 2015년 이후 공무원 14만을 감축, 현재는 2차 대전 이후 최소의 공무원을 유지하고 있다.

 

두 나라는 정부 재정으로 일자리를 늘린다는 것이 하책중의 하책이란 것을 역사적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문재인 정책의 골간인 소득주도 성장이란 경제학 이론이나 경제학 사전에도 없는 용어다. 큰정부 정책 펴다가 옛 소련은 국가 소멸이란 비운을 맞았고 동유럽국가들도 사회주의를 포기했다. 지금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공산 국가 중 중국, 베트남, 쿠바는 작은 정부를 지향. 자본주의를 받아들였지만 북한만이 모든 생산 수단을 정부가 소유하고 전 경제 분야를 하나에서 열까지 개입하는 큰정부 정책을 펴고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과 묘비문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받는 사회의 실현을 위해 프롤레타리아가 폭력혁명을 통해 세상을 공산주의 사회로 바꾸자는 것으로 정리된다.

 

지금 우리 사회 일각의 거대 담론 중의 하나도 세상을 바꾸자이다. 어딜가나 이 말이 들린다. 진보를 자처하는 시민단체나 운동권, 노조의 투쟁현장에선 거의 예외없이 민중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 ‘촛불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 ‘총파업투쟁으로 세상을 바꾸자’, ‘1%에 맞선 99%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등의 구호가 나온다.

 

자본주의 갈아엎어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도 등장한다. 소위 민중가요 중에는 세상을 바꾸자는 제목의 노래도 있다. “세상을 바꾸자/ 멈춰진 역사의 수레를 굴려라/ 노동의 힘으로/ 건설할 새 세상/ 열려진 미래를 벅차게 안으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구구 절절 투쟁과 전쟁이란 단어와 함께 분노와 증오가 묻어 나온다. 구체적으로 화물연대 등의 투쟁현장에는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바퀴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가 등장한다.

 

정치권에서는 투표로 세상을 바꾸자’, 여성계에서는 여성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 예술계에서는 음악(미술)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 사이버 공간에서는 네티즌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한다. 기업과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기업’, ‘세상을 바꾸는 대학등의 슬로건이 그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세상을 바꾸자는 말을 좋아했다. 그는 2009319일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나는) 대표선수 자리까지 갔지만 세상을 바꾸자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고 썼다. ‘세상을 바꾸자는 말은 당시 민주노동당의 슬로건이기도 했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가 바라던 평생의 꿈이었다.

 

노 대통령은 200297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사회운동단체 학벌 없는 사회초청 강연에서 “80년대를 평가하면 억압이 주류가 아니라 저항이 주류인 사회였다. 저항적 세대가 주류가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2006929일에는 경복궁 북문 개방행사에 참석한 서울 청운초등학교 학생들을 향해 사람 간에는 지배와 피지배가 있습니다. 내 희망은 지배와 피지배자간의 차이가 작기를 바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해 초등학생들을 모아 놓고 계급투쟁을 선동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노대통령은 이밖에도 역사에서 본질적인 문제는 지배와 예속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에서의 핵심적인 주제는 지배 그리고 예속에서 발생하는 제반 갈등의 문제이고 모든 것의 근원이 거기 있다고 생각합니다”(‘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오마이뉴스, 2009)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자는 말은 나쁜 것을 고치자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진보는 나쁜 것을 바꾸자는 것이고 보수는 좋은 것을 지키자는 것이다. 그래서 둘 다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자며 가장 이상적인 것을 부르짖은 진보사상이었던 마르크스-레닌주의 즉, 공산주의가 반동(reactionary)으로 돌아간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 정부정책 특히 경제정책은 결코 실험이나 연습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경제는 아담 스미스의 지적대로 수많은 개인들이 (사적소유권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익’(self-interest)을 위해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만 소득이 증가하고 성장이 이뤄져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양극화가 해소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자유시장경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르크스의 충실한 제자가 될 생각인가?

 

기사입력: 2018/02/19 [13:00]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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