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 북한군 창설 85주년은 날조된 것
서옥식 박사, 날조 입증 객관적 자료 제시
 
조영환 편집인

 

 4.25 북한군 창설 85주년은 날조된 것, 서옥식 박사, 날조 입증 객관적 자료 제시

 

현 북한군 모태라는 조선인민혁명군은 실재하지않은 가공의 군대

1948.2.8 창군을 김일성 항일업적 미화위해 1932.4.25로 변경

1932425일은 김일성 아닌 李英培항일유격대만든날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만들었다는 주장은 북한기록에 1962년까지 없다

중국-일본-러시아 자료에도 항일유격대 창설기록 한 줄도 없다

1983년 출간 북한 공식 역사서에도 창군일은 194828일 명시

  

25일은 북한이 주장하는 북한군(공식명: 조선인민군) 창군 85주년이 되는 날.

 

북한군은 당의 군대’‘수령의 군대’‘혁명의 군대로서 당과 수령, 혁명의 수뇌부를 보위하고 사회주의체제 수호 및 남조선 혁명을 통한 전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무력수단이라고 북한의 모든 규범과 문헌에 서술돼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조선인민군 창설 85주년은 조작된 것이다. 이런 조작된 것을 건군절이란 이름의 국가명절로 지정하고 각종 기념행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 북한의 실체다.

 

북한은 조선인민군을 실제로는 해방후인 194828일 창설하고 매년 이날 창군기념식을 거행해왔으나, 1978년부터 창군일을 1932425일로 변경하고 1996423일에는 425일을 창군일로 공식 지정, 국가명절로 지켜오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거의 모든 언론이 이런 조작된 사실을 지적하지 않고 창군일로 기정사실화해 보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창군일 변경이유로 김일성이 1932425일 최초의 항일무장대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창설했고 2년 후인 19343반일인민유격대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반일인민유격대는 당시 만주의 길림성(吉林省) 안도현(安圖縣)에서 이영배(李英培)란 사람이 만든 것을 김일성이 도용했고 조선인민혁명군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은 가공의 군대로, 북한 당국이 훗날 김일성의 우상화를 위해 날조한 것이다. 김일성이 20세때 일제에 대항하기위해 1932425반일인민유격대를 만들고 이를 2년 후인 19343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해 일제가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 조선인민혁명군을 통해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는 주장은 오로지 북한의 날조된 교과서 등 역사서에만 기술돼 있을 뿐 당시 김일성의 활동무대였던 중국이나 소련의 어느 공식 기록, 그리고 투쟁상대였던 일본의 문헌이나 자료에도 없다.

 

북한이 펴낸 력사사전’(歷史事典,1971),‘조선로동당략사’(朝鮮勞動黨略史,1979),‘현대조선력사’(1983)에 따르면 오늘날의 북한 군대인조선인민군이 창설된 날자는 분명히 194828일로 적혀있다. 김일성은 이날 창군기념 열병식에서 조선인민군 창건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194828일이 조선인민군의 생일임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도 북한은 창군일을 1932425일로 소급하고 국가명절로까지 지정한 것이다. 한가지 웃기는 사실은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북한 자체의 기록도 각 연도별로 상이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북한은 1971년판 력사사전에서 1932항일유격대를 창건했다고 밝혔으나, 1979년 조선로동당략사나 그 이후 자료에서는 이를 반일인민유격대로 명명하는 등 고유명사 조차 상이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는 조급하게 역사 날조를 하다 보니 발생한 문제이다. 이러한 현상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에서 흔히 발생되는 사실이다.

 

서옥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전 연합뉴스 편집국장)은 그의 저서 <거짓과 왜곡 조작 날조를 가르치는 사회: 북한 교과서 대해부(2015)에서 북한의 이같은 반일인민유격대 및 조선인민혁명군 조작 사실을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면서 지적하고 있다.

 

북한이 역사서 등 각종 문헌과 관영매체를 통해 주장하고 있는 조선인민혁명군의 결성과정을 보면 김일성이 1930630일 만주 길림성의 장춘현(長春縣) 카륜에서 공청(공산주의청년동맹)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성원 회의를 소집해 조선혁명의 주체적 혁명노선인 항일무장투쟁노선을 제시했으며 이러한 투쟁노선 관철을 위해 193076일 이통현(伊通縣) 고유수(孤楡樹)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의 핵심자들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첫 혁명무력인 조선혁명군을 결성한 다음, 19311219일 소집된 연길현(延吉縣) 명월구(明月溝)회의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조직하고 전개하기위한 구체적인 방침을 제시해 유격전을 항일무장투쟁의 기본형식으로 규정한반일인민유격대창건을 결의하고 1932425일 안도현(安圖縣)소사하토기점(沙河土器店)골에서 장기간에 걸쳐 육성한 조선혁명군 성원들과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원들을 핵심적 골간으로 하여 선진적인 노동자&#10625;농민&#10625;애국청년들로 조선인민의 혁명무력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했으며, 이어 반일인민유격대가 조선인민의 혁명군대로서 항일유격전쟁 발전의 요구에 맞도록 군사적 지휘 및 관리체계와 후방보장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방침을 천명하고 그 구현으로서 19343반일인민유격대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조선인민혁명군이 김일성의 영도하에 15(1930-1945)에 걸친 항일무장투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이룩했고, 해방 후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군대와 당, 국가 창설의 골간이 됐으며 현재의 조선인민군’(194828일 창건)으로 직접 계승·발전됐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김일성이 1932반일인민유격대를 만들었고 1934년 이를 개편해 조선인민혁명군을 조직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역사날조임이 객관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그 날조 배경을 보면 조선인민혁명군이란 192941일 만주에서 반공(反共)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돼 193896일 해체될 때 까지 이 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한인(韓人) 자치기관이자 항일독립운동 단체인 국민부(國民府)산하의 조선혁명군19331월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滿洲省委員會)가 일제에 대항하기위해 중국 공산당중앙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한인과 중국인 유격대를 통합해 조직한 동북인민혁명군의 명칭을 조합해 북한이 훗날 이름을 붙인 가공의 군사조직(조선혁명군+동북인민혁명군=조선인민혁명군)이다.

 

국민부 산하 독립군조직인 조선혁명군은 김일성이 조직한 것이 아니다. 김일성은 19304월 조선혁명군에서 탈퇴한 공산주의 계열의 대표격인 이종락(李種洛, 당시 조선혁명군 제9대장)이 길림성 카륜과 고유수 지방에서 지휘하는 국민부 탈퇴파 조선혁명군’(이종락은 국민부 탈퇴 후에도 계속 조선혁명군이란 명칭을 사용함)19307월초 참사(參士: 하사관) 자격으로 입대해 마적활동을 하다가 19311월 동 조직이 괴멸되면서 자연스럽게 이탈했다. 따라서 김일성이 조선혁명군을 조직해 지휘했다는 주장은 100% 거짓말이다. 당시 조선혁명군 내부에는 사회주의자들이 많이 침투해 있었는데, 이종락도 이들에 동조했다가 이탈해 길림과 흑룡강(黑龍江) 지방을 근거지로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朝鮮革命軍 吉江指揮部)’를 설치, 공산주의 혁명운동을 전개했다.

 

한편 동북인민혁명군은 만주사변(1931) 직후인 19331월 중국공산당이 일제에 대항하기위해 만주에서 활동하던 한인 무장유격대와 중국인 무장유격대들을 통합해 만든 군사조직으로, 19339월에 중국인 양징위(楊靖宇)를 총사령, 한인 여성 이홍광(李紅光)을 사장(師將)으로 하여 제1군 독립사가 조직된 이래 19343월에 제2군 독립사가 만들어졌고, 이어 제3, 4군 독립사가 조직됐다.

 

동북인민혁명군은 19357인민전선전술을 핵심 의제로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 국제공산당) 7차대회 결정에 따라 그해 9월 해체된 후, 1936년 출범한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에 흡수통합됐다. 동북항일연군은 이러한 결정이후 19358월 쓰촨성(四川省) 모아개(毛兒盖)에서 발표된 중국공산당의 소위 ‘8.1선언에 따라 만주지방의 동북인민혁명군과 그 밖의 모든 반일무장부대가 항일구국의 기치 아래 연합해 이듬해 결성된 부대다. 동북항일연군은 중국공산당 지도아래 만주에서 만들어진 항일투쟁을 주도한 군사조직으로, 그 명칭에서 보듯 중국인과 조선인 등의 통일전선 성격을 띠었다.

 

, 만주에서 활동하고 있던 조선인과 중국인의 유격부대를 중국 공산당 주도로 통합한 군사조직이다. 그 중심세력은 어디까지나 중국인 위주의 중국공산당이었다. 김일성은 193110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후 동만주(東滿洲)지방의 중국공산당 유격대원으로 있다가 1933년 이 유격대가 동북인민혁명군에 흡수 통합되자 일개 대원으로 중국공산당을 위해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김일성은 자신이 소속된 중국공산당의 동북인민혁명군 2군 독립사 창설 시기가 19343월인데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선인민혁명군을 독자적으로 창설했다고 존재하지도 않은 사실을 날조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김일성의 중국공산당 가입사실 그리고 동북항일연군(동북인민혁명군 포함)활동사실을 공식 기록에서 은폐하면서 반일인민유격대와 조선인민혁명군이 별도의 조직으로 전개된 것으로 교과서 등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일성은 당시 반일인민유격대나 조선인혁명군 같은 군조직을 결성할 위치에도 있지않았고, 결성할 필요나 여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시 조선이 아닌 중국땅 만주에서 활동했던 김일성은 코민테른의 1()1()1() 주의 원칙에 따라 독자적으로 당이나 군대를 만들 수 없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오로지 만주에는 중국공산당과 중국공산당소속 군대(동북항일연군)만 공식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김일성이 19세때인 193110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것, 그리고 이후 중국공산당 산하의 동북인민혁명군을 거쳐 동북항일연군에 소속된 것은 이러한 111군 주의 원칙 때문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감안해보더라도 김일성이 독자적으로 군대를 창설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했다는 1934년과 그 전후 시기(1932-1936)는 소위 민생단(民生團)사건으로 김일성도 체포되고 도피생활을 하는 등 영일이 없었다. 민생단사건이란 193211월부터 19362월까지, 34개월 동안 동만주(東滿洲), 즉 간도 지역에서 중국 공산당이 친일단체인 민생단과 관련된 혐의로 조선인 공산당원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조선인 600여명을 마녀 사냥식으로 체포, 살해한 사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동만주 지역에서 조선민족 단독으로 항일투쟁부대를 창설,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김일성이 193110월 이후 중국 공산당에 가입해 있었는 데도 정작 중국 공산당의 공식 자료에는 그가 반일유격대를 만들었다거나 이를 모태로 조선인민혁명군을 결성했다는 기록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중국 하얼빈의 흑룡강성 혁명박물관 벽면에는 1930년대 중국동북지방(만주)의 항일무장투쟁을 설명하는 자료들이 가득히 전시돼 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의 이 자료에는 김일성이 항일운동을 벌였다는 기록이 한 줄도 없다. 김일성이 안도현(安圖縣)에서 창설했다고 주장하는 반일인민유격대의 경우, 영도자(창설및 지휘자)는 이영배, 명칭은 안도반일인민유격대’, 창설일자는 1932425일로 적혀있다.

    

김일성은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1932425일 안도현(安圖縣) 소사하토기점(小沙河土器店)골에서 반일인민유격대란 항일무장대오를 결성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일성이 안도현에서 만들었다는 반일인민유격대는 이영배가 조직한 안도반일인민유격대를 자기가 만든 것처럼 훗날 조작한 것이다. 웃기는 것은 조선전사’(17, 1981)와 김일성회고록 세기와 더불어’(2, 1992)에는 김일성이 대장이고 이영배를 부하의 한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흑룡강성 혁명박물관이 반일인민유격대의 영도자로 이영배를 언급하고 있는 만큼 북한으로서는 수령이 수모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북한이 중국에 대해 박물관 기록 수정을 요청한 것으로 짐작되지만 중국이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김일성에 대한 북한의 기록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의사표시로 받아들여 질수 있을 것이다.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조직했다고 북한이 관영매체등을 통해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2년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이런 주장이 없었다. 또 이런 항일유격대가 안도현의 토기점골에서 결성됐다는 주장은 1962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1972년 처음으로 나왔다. 유격대의 이름이 반일인민유격대였다고 주장한 것은 훨씬 뒤인 1981년에 출간된 조선전사’(17)가 처음이다. 이 이름은 1992년부터 출간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정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북한의 건군 기념일인 1932425일을 날조된 역사라며 외면하고 있다.

    

김일성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계승본) 8권에 실린 조작된 김일성의 조국해방총공격전 전투명령문

       

북한이 주장하는 반일인민유격대 결성에 관한 중국 측 기록들은 하얼빈에 있는 흑룡강성 혁명박물관에 가장 잘 전시돼 있다. 박물관의 벽면에 빼곡히 전시돼있는 항일유격대 조직서열표에는 1932425일 안도반일유격대를 조직한 사람은 이영배로 돼있고 김일성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 유격대명칭(遊擊隊名稱)은 안도반일유격대(安圖反日遊擊隊) 성립시간(成立時間)1932425주요영도인(主要領導人)은 이영배(李英培)라고 적혀 있다. 일제의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작성한 자료에도 지역명을 딴 반일인민유격대5개나 나오지만 이 자료에도 김일성의 이름은 없다.

<> 19323월이후 생긴 동만주 지방의 항일유격대

 

안도반일인민유격대

이영배 차광수 김일용 박훈 김철희

왕청반일인민유격대

양성용 김철 이광 정웅산 김영환

연길반일인민유격대

박동근 박길 임승규 유난환 김순덕 최현

훈춘반일인민유격대

오변 장시환 양만봉 안길 이봉수

화룡반일인민유격대

차용덕 박과 박용순

 

 조선총독부 경무국, ‘최근 조선의 치안상황’, 1936, p. 175.

 

한편 김일성은 194010월 말부터는 일본군의 토벌을 피해 자신이 소속됐던 동북항일연군 일부 패주병들과 함께 소련 연해주로 도망간 뒤 하바로프스크 근교 야영지에 머물다 1942년부터 1945년 해방될때 까지 소련극동군 제25군 예하 88정찰여단의 제1영장(대대장급)으로 있었다. 따라서 김일성이 존재하지도 않은 조선인민혁명군 총사령관 자격으로 소련의 대일참전 선포와 함께 194589일 국내 총진격명령을 내려 조선을 해방시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북한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창설을 사실화하기위해 조선인민혁명군의 총지휘부가 백두산 밀영에 19458월 해방때 까지 자리잡고 있었고 백두산 밀영을 중심으로 도처에 크고 작은 10여개의 또 다른 밀영이 존재했다고 주장하지만 지휘계통을 비롯한 전투조직과 작전명령서, 그리고 군을 구성하는 병력과 장비, 보급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최소한의 인력 또는 기구라도 존재해야하는데 이에 대한 자료나 기록이 전무한 것을 보면 조선인민혁명군은 가짜 조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일성이 194010월부터 해방될때까지 소련 연해주에 있었는데 백두산 밀영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총사령부를 지휘했다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망명한 전 조선노동당 비서 황장엽씨도 회고록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1998)에서 백두산 밀영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은 조작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김일성과 함께 항일투쟁을 한 빨치산 동지 중 조선인민혁명군의 이름으로 싸웠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점도 조작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북한의 평양에는 김일성의 처 김정숙과 김철주(김일성 동생), 김형권(김일성 숙부) 등 김일성 가계 인물과 북한정권 수립 1세대들, 김일성과 함께 항일운동을 했던 빨치산 대원, 기타 항일운동을 했던 사람 등 약 200명 내외가 묻혀 있는 대성산혁명렬사릉(大成山革命烈士陵)이란 것이 있는데 빨치산 출신 안치자는 김책, 강건, 최현, 최용건, 김일, 오백룡, 오진우 등 겨우 십수명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실은 김일성이 거느렸다는 부대원이 소수였으며, 거창한 이름의 조선인민혁명군 같은 것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북한은 중국공산당의 지침에 따라 결성됐던 이 동북항일연군 또는 동북인민혁명군의 역사를 조선인민혁명군의 그것으로 기술하는 왜곡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의 회고록 제3권은 반일인민유격대가 통합돼 19343월에서 5월 사이 조선인민혁명군이 창설됐고, 이것이 동북항일연군이 조직됐을때 동북항일연군의 제2군이었다고 허위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자료나 중국공산당 자료에는 이러한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기록이 없다.

 

북한은 조선인민군을 항일무장투쟁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계승한 조선노동당의 혁명적 무장력’(조선노동당 규약 제46)이며,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 서슴없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진정한 혁명전사’(48)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정치사전’(政治辭典)(1985년판)우리 인민군대는 항일무장투쟁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직접 이어 받은 혁명군대이며, 항일투사들을 골간으로 하여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들로 조직된 인민의 참다운 군대입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인민군대는 북반부에 수립된 인민민주주의제도를 원쑤(원수)들의 침해로부터 튼튼히 보위하며 남조선에서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고 조국을 통일하여야 할 숭고한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라는 김일성저작집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김일성이國民府의 조선혁명군을 자신이 창설했다고 날조한 사례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무장투쟁준비를 위한 첫 사업으로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시였다.

조선혁명군을 결성하는데서 선차적으로 나서는 것은 사람과 무기를 해결하는 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부터 키워오신 청년공산주의자들을 무장조직의 핵심으로 삼으시였다.

한편 독립군 가운데서 선진적인 청년들을 교양하여 혁명군에 받아 들이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함께 여러 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무기를 얻기도하고 일본놈들의 무기상점에서 몰래 총을 빼오게도 하시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준비밑에 주체19(1930)76일 고유수 삼광학교에서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시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만들어낸 조선혁명군은 공산주의리념에 의해서 지도되며 군중정치사업도

 

우리가 만들어낸 조선혁명군은 공산주의리념에 의해서 지도되며 군중정치사업도 하고 군사활동도 하는 정치 및 반군사조직이였다.&#10219;

조선혁명군은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하는 조선혁명가들의 첫 무장조직이였으며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기위한 정치 및 반()군사조직이였다.(출처: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중학교 제4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2(2003), p. 27.)

 

카륜회의에서 중요한 과업의 하나로 내세운 당조직건설사업은 첫 당조직건설동지사의 결성으로 제일보를 내디디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만족할수 없었다. 우리앞에는 무장투쟁준비를 다그쳐야 할 어려운 과제가 남아있었다.

우리는 무장투쟁준비를 위한 첫 사업으로 고유수에서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였다.

우리가 1년이나 2년이 지난 후에 상비적인 혁명무력을 창건할것을 예견하면서도 조선혁명군과 같은 과도적인 정치 및 반군사조직을 내온것은 그 군의 활동을 통하여 대규모의 유격부대를 꾸리기 위한 준비를 해두자는데 목적이 있었다. 우리는 조선혁명군의 정치군사활동을 통하여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축성하고 무장투쟁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경험을 축적하려고 하였다.

사실 우리한테는 무장투쟁을 벌리는데 필요한 지식이 별로 없었다.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 령토에서 무장투쟁을 해야 하는 조건에서 우리에게는 그에 상응한 경험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본보기로 삼을만 한 군사교범이나 경험은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었다.

우리에게 밑천이 있다면 독립군출신의 몇몇 동무들과 화성의숙을 다닌 얼마간의 동무들이 있고 몇자루의 권총이 있을뿐이였다. 그 나머지는 백지상태였다. 무기도 우리 손으로 획득하고 군사적경험도 우리스스로 축적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의 과도적조직으로 내온것이 바로 조선혁명군이였다.

(출처: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2권 제4장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던 나날에(1930.5-1930.12) - 5. 조선혁명군)

 

김일성이 이영배의 반일인민유격대를 자신이 창건했다고 조작한 사례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명월구회의가 끝난후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기위한 준비사업을 본격적으로 다그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작원들에게 각 지방에서 작은 규모의 유격대를 조직할데 대한 과업을 주어 왕청(望城), 연길현을 비롯한 여러지역에 파견하시였다....중략....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 지자 주체21(1932)425일 안도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반일인민유격대창건식에서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을 선포하시고 반일 인민유격대가 어떤 군대이며 무엇을 위하여 싸우는가를 밝혀 주시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일제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고 나라와 인민을 사랑하는 로동자, 농민, 애국청년들로써 조직되였으며 진정으로 인민의 리익을 보호하는 혁명적인 무장력입니다. 인민유격대의 목적과 사명은 조선에서 일제식민지통치를 뒤집어 엎고 조선인민의 민족적독립과 사회적해방을 달성하는것입니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주체사상을 지도적지침으로 하는 혁명군대이며 로동자, 농민, 애국청년들로 조직되고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싸우는 진전한 인민의 군대였다.(출처: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중학교 제4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2(2003), pp. 33-37.)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체21(1932)425일 안도현 소사하의 토기점골 등판에서 창건하신 상비적인 혁명적무장력이다.

반일인민유격대에는 조선혁명군대원들과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원들을 핵심으로 선진적인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이 망라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9(1930)년 여름 카륜회의에서 주체적인 항일무장투쟁로선을 제시하시고 조선혁명가들의 첫 무장조직인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시였으며 주체20(1931)년 겨울 명월구회의에서는 유격전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여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할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내놓으시면서 상비적혁명무력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할데 대한 방침을 천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명월구회의방침을 관철하시기 위하여 수많은 지도핵심들을 만주의 넓은 지역에 파견하시는 한편 자연지리적조건이 유리한 안도에서 반일인민유격대창건사업을 통일적으로 지도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무장대오의 결성을 위한 골간들이 충분히 마련되자 주체21(1932)3월 상순 몸소 키우신 혁명가들을 핵심으로 하여 안도현 소사하에서 처음으로 소규모의 유격대오인 유격대소조를 조직하시고 이어 지방마다 그것을 결성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동만각지에서 유격대소조들이 련이어 조직되였다. 소규모의 유격대오가 조직되는 한편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축성하고 무기를 마련하며 유격대창건앞에 가로 놓인 엄중한 난관들을 극복하는 투쟁이 힘있게 벌어짐으로써 혁명적무장력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자체의 력량, 자체의 힘으로 창건할수 있는 주객관적조건들이 충분히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에 기초하시여 안도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하시고 그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창건식에서 반일인민유격대창건에 즈음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반일인민유격대의 성격과 사명 그리고 항일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벌려나가는데서 나서는 과업들을 밝히시였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지도적지침으로 하는 참다운 주체형의 혁명군대였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투쟁하는 진정한 인민의 군대였으며 당면하게는 일제침략자들을 물리치고 민족적해방을 달성하며 나아가서 모든 계급적압박과 착취를 청산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할것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무력이였다. 반일인민유격대는 무장을 들고 일제와 싸우는 전투대오인 동시에 인민대중을 교양하고 혁명투쟁에로 조직동원하는 정치적군대, 혁명군대였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은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에서 획기적전환을 가져온 력사적인 사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반일인민유격대오는 남만과 북만에도 조직되였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창건당시 중대를 기본전투단위, 생활단위로 하여 지구별로 편성되였다. 중대밑에는 소대, 소대밑에는 분대가 있었다. 유격대오가 급격히 장성하여 중대수가 늘어나게 되자 현단위로 대대가 조직되였으며 그후 짧은 기간에 대대편제를 련대편제로 고쳤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주체23(1934)3월에 조선인민의 첫 주체적혁명무력인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오랜 기간 영웅적항일무장투쟁을 벌려 일제침략군을 격멸하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였다.(출처: 우리 민족끼리, 반일인민유격대, 주체103(2014)425)

 

반일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했다고 조작한 사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불패의 대오로 자라난 반일유격대에 대한 통일적인 지도를 더 잘하기 위하여 주체23(1934)년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하시였다.

그후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를 내오시고 인민혁명군과 지방의 당조직들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게 하시였다.

그리하여 조선인민혁명군과 당조직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하나와 같이 움직이게 되였고 유격대는 한층 더 강화하게 되었다.(출처: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중학교 제4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2(2003), p. 47.)

 

기사입력: 2017/04/24 [12:00]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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