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지와 출생일 조작해서 김정일 찬양
'정일봉'이란 것도 화폐에 집어넣은 우상화
 
서옥식 북한문제전문가/정치학 박사

 北, 김정일 73회 생일 찬양일색...하지만 출생지⦁생년 모두 날조
출생지가 러시아인데도 백두혈통 세습왕조 위해 백두산 밀영으로 조작
평양 고교시절까지 이름도 러시아식 ‘김유라’...학적부에도 러시아이름 등재
황장엽회고록, 옛소련정부 공식문서, 일본군 문서에 출생지 러시아로 기록
태어난 해 1941년은 김일성(1912)과 30년차 맞추기 위해 1942년으로 고쳐
“김정일 태어나던 백두산에 쌍무지개 떴다...지금도 이날이면 신비한 자연현상”
“김정일 죽자 백두산에 굉음⦁신비한 노을...백두산천지 요란한 소리내며 얼음 깨져”
“백학이 김정일 동상 세바퀴 돌다 날아갔고 산비둘기가 유리창 깨고 장례식장 진입”
백두밀영 정일봉 바위 무게와 높이는 김정일 생일대로 각각 216t와 216m
금수산태양궁전 길이는 김정일생일과 같은 216m, 폭은 김일성생일 의미하는 415m
측근 고급외제차량 번호판은 216...6을 세 번 곱하면 216...666은 김정일 대의원 선거구
생애 첫 골프에서 홀인원 11개...전무후무한 사상 최고의 골프선수 김정일 자랑
                                   서옥식(북한문제연구가, 정치학 박사)

 

북한은 김정일의 73번째 생일이라는 이른바 ‘광명성절’(2월 16일)을 맞아 김정일 국방위원장 찬양에 열을 올렸다.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15일 <위대한 선군영장의 업적 혁명의 성지와 더불어 영원하리>란 논설에서 “정력적인 사상이론활동과 혁명실천으로 역사에 전무후무한 크나큰 업적을 이룩하셔 태양조선, 태양민족의 존엄을 누리에 빛내주신 위대한 백두산장군 김정일 대원수님을 우러러 1천만 군민이 부르는 위인칭송의 송가, 김정일장군 찬가가 2월의 하늘가에 높이 울려 퍼진다”고 밝혔다. 신문은 또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평생 헤치신 현지지도 강행군길은 지구둘레를 근 17바퀴나 돈 것과 맞먹는 167만4천 610여리, 그이께서 찾고 찾으신 단위는 무려 1만4천 290여개”라면서 "김정일 동지는 21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정치지도자“라고 칭찬했다.


북한은 이에앞서 13일 백두산 밀영에서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비롯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김용진⦁리철만 내각 부총리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정일에 대한 충성결의대회를 열고 “(2월 16일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서 전설적 빨치산의 아들로 받아 안은 대행운의 날”이라고 치켜세웠다.
또 이날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도 조선인민군 육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전략군 장병들의 결의대회가 열렸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인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을 제외하면 군 서열 1위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결의대회 연설을 통해 "인민군대는 침략과 도발의 원흉, 강도의 무리 미제가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 생존권을 0.001㎜라도 침해하고 건드린다면 가장 무자비하고 무서운 불벼락을 들씌울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밖에 평양에서는 축하 우표발행과 함께 김정일화 축전이 개막했고, 웅변모임, 중앙미술 전시회, 체육대회도 잇따라 열렸다. 백두산 삼지연에서는 광명성절을 기념하는 눈얼음조각 축전이 개최됐다. 대외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 등 북한 매체들은 김정일의 생전 사진과 업적을 찬양하는 글들로 도배를 이뤘다.

 

▲ 백두혈통 세습왕조 위해 김정일 출생지, 생년 등 모두 조작


하지만 결의대회와 경축행사에서 위대한 령도자, 친애하는 지도자, 영광스러운 당중앙, 어머니 당, 불세출의 위인, 천출령장(天出靈將) 등으로 불려진 김정일은 사실은 출생지, 생년(生年)이 조작됐으며 경력도 허위에 찬 것이 많은 그야말로 ‘허구의 화신’으로 만들어져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이름까지도 고등학교 다닐때까지 김정일아닌 러시아 식의 ‘김유라’였다. 김정일이 다녔던 평양의 남산고급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에 해당)가 폐교된 것은 학적부에 ‘김유라’로 적혀있어 김정일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출생지, 생년에 이어 엄밀히 말하면 이름도 가짜인 셈이다.


일본 관동군과 만주군의 공식기록 문서, 그리고 옛 소련의 기록에 따르면 김정일은 1941년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하바로프스크 근교에서 태어났다. 당시 김일성은 소련 극동군사령부(The Far East Command) 88특별여단 제1영장(대위, 중대장급) 신분으로 하바로프스크에 머물고 있었다. 극동군사령부는 소련보안위원회(KGB)의 전신인 NKVD 소속으로 김일성은 조선에서의 소련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첩보요원이었다.(김정일이 러시아의 첩보요원이었다는 기록은 2005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가 펴낸 Jasper Becker와 Rogue Regime 의 공저 <Kim Jong Il and the Looming Threat of North Korea>에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북한은 김정일의 출생지가 백두산의 백두밀영(白頭密營), 출생일은 1942년 2월 16일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백두밀영은 량강도 삼지연군(해방 당시 기준으로 함경남도 혜산군)에 있다. 북한은 백두밀영은 주체25(1936)년 9월에 꾸려진 후 조국이 광복될때 까지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있었으며 김일성과 부인 김정숙이 항일 운동을 하던 중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주장은 2003년에 평양의 교육도서출판사가 펴낸 중학교 제5학년 교과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 혁명력사>에 수록돼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100% 날조이다. 김정일의 출생지는 시베리아 하바로프스크 교외의 브야츠크 마을이다. 김일성이 1940-1945년 소련의 ‘붉은 군대’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만큼 지금의 러시아는 김정일의 백두산 출생설이 거짓임을 잘 알고 있다.


옛 소련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Izvestiya)지의 사회부장 안드레이 이레슈는 지난 1991년 12월19일 발매된 일본의 주간잡지 ‘프라이데이’에 기고한 글에서 김일성의 상관으로 당시 소련 제25군 군사위원이었던 니콜라이 레베데프 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 주석 김일성은 제2차 세계대전중 백두산 부근에서 항일 빨치산 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소련 하바로프스크 부근의 시골에 있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러시아의 진보적 주간지 ‘지구의 메아리’도 1992년 8월호 기사에서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출생했다는 북한의 주장에 대해 “권력 승계를 위해 신화가 필요했던 김정일은 실제 하바로프스크의 한 마을에서 출생했으나 이듬해 백두산에서 다시 출생해야만 했다”고 꼬집었다.


옛 소련의 비밀첩보 조직이었던 KGB의 1급 비밀문서는 김일성이 해방당시 한반도 지역이 아닌 소련에서, 그것도 항일투쟁이 아니라 붉은 군대의 첩보요원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비밀 정보를 전문적으로 입수해 폭로하고있는 美전문 간행물 ‘정보와 국가안보’(Intelligence and National Security)가 지난 1992년 1월 펴낸 한 특집물 속에 기록돼있다.


 김정일의 실제 고향은 러시아 극동지역인 하바로프스크에서 서남쪽으로 75km 미터 떨어진 곳의 브야츠크이다. 또 그가 태어난 해는 1942년이 아니라 1941년 2월 16일이며 태어날 때 당시 이름은 러시아식 이름인 ‘유라 킴’이었다. 유라는 러시아 이름 ‘유리’의 애칭이다.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난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는 그가 김정일의 어릴적 소꼽친구였다고 증언했다(바실리예비치는 2011년 12월 22-24일 밤 9시 40분 방영된 KBS 1TV 특별기획 김정일 3부작 ‘김정일의 모든 것을 찾아서’ 제1편 '유라 킴‘에서 김정일의 출생과 성장과정, 유년기, 학교생활 등을 자세히 밝히는 가운데  김정일의 사진과 함께 당시의 에피소드들을 들려줬다).

 

김일성이 만주에서 항일빨치산 소부대 활동을 하다가 일제의 토벌을 피해 소련으로 들어간 때가 1940년 10월 경이다. 소련으로 들어간 김일성은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소련군 대위였다. 이때 김일성과 김정숙 사이에 김정일이 맏아들로 태어났다. 김정일은 1945년 8.15 해방을 맞아 아버지와 함께 평양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4년간 연해주 지방을 전전하며 병영의 탁아소에서 성장했다.


당시 브야츠크 거주자로 김정일을 알고 지내던 아우구스타 세르게예브나(여, 당시 73세)는 “김정일이 태어난 순간부터 떠난 날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서 “그는 1941년 2월 북한이 김정일 출생지라고 조작해낸 백두산 밀영, 앞에 있는 것이 태어났다는 ‘귀틀집’이고 뒤에 생일과 일치한다는 높이 216m의 날조된  ‘정일봉’이 보인다. 16일에 태어났으며 어릴 때의 이름은 ‘유라’였다”고 증언했다. 그는 2002년 8월 김정일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갈 때 한국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조선일보 2002년 8월 23일자 등 한국언론  보도).

 


‘비극의 항일 빨치산’의 저자인 작가 김찬성은 김정일 탄생시기인 1941년 당시 소련 제2극동군사령부 88특별여단 소속 소련인 통역관 스테판 니콜라야비치 등의 증언을 토대로 김정일이 비야츠크의  하마탄 부근의 소련 병원에서 의사 왈야(당시 65세)의 도움을 받아 태어났다고 말했다. 김정일에게는 1944년에 태어난 남동생 김만일이 있었는데 그도 소련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소련식으로 ‘슈라’라는 이름을 갖고있었다. 슈라는 1947년 평양의 집 마당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놀다가 연못에 빠져 죽었다. 슈라는 형 유라 즉, 김정일과 함께 연못에서 놀았는데 김정일이 재미삼아 물에 빠진 동생이 나오려고 하자 머리를 물에 밀어넣어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밀영과 백두산 천지가 새겨져있는 북한 화폐


김정일이 다녔던 평양의 조선로동당 중앙당사 앞 남산고급중학교(고등학교에 해당)가 1982년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폐교됐는 데  폐교이유는 당 간부 자녀만을 위한 학교때문이라고 전해져 있으나 사실은 김정일이 김유라라는 이름으로 이 학교에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정일은 1960년 7월 남산고급중학교 졸업을 며칠 앞두고 같은 반 학생들에게 “이제 내 이름은 김유라가 아니라 김정일로 고쳤으니 앞으로 김정일로 불러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이라는 이름도 처음에 ‘金正一’로 썼다가 뒤에 ‘金正日’로 바꿨다. 어머니인 김정숙의 ‘正’과 김일성의 ‘日’을 합성해 직접 만든 이름이다. 이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유일한 적자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이복동생인 ‘평일’과 ‘영일’은 모두 ‘한 일’(一)자를 쓰고 있다. ‘正日’ 로 바꾼 것은 1980년 10월이다. 이해 10월 10일 김정일은 당 내 3대 권력기구에 모두 선출된다.


북한은  1987년 2월부터는 백두산 밀영에 귀틀집을 마련, 백두산 밀영 고향집이라고 부르며 성역화했으며, 1988년 이 백두산밀영이 소재한 소백산노동자구를 백두산밀영노동자구로 고쳤다. 백두밀영이 김정일의 고향으로 된 것에 대해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로동당 비서는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출신들을 불러 김정일이 태어난 백두산의 밀영을 찾아내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백두산 일대를 뒤졌지만 애초에 없던 밀영지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자 김일성이 직접 나서 경치도 적당하고 위치도 그럴듯한 곳을 찾아내 ‘여기가 밀영지였다’고 지적하고 그 뒷산을 ‘정일봉’이라고 이름지어 주었다. 당 역사연구소는 구호나무도 준비하고 큰 바위에다 ‘정일봉’이라고 써서 산 정상에 올려붙였다. 그리고 예술인들은 ‘정일봉’이라는 노래를 지었다”(황장엽 회고록-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서울: 한울, 1998, p. 245).


북한은 김정일이 ‘백두산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라면서 당시 김정일이 태어나자 항일혁명투사들은 김정일을 ‘백두광명성’으로 칭송했다고 교과서 등에 기록하고 있다. 김정일의 출생일을 실제보다 1년 늦도록 1942년으로 조작한 것은 김일성 생일 1912년과 꺾이는 해(정주년)를 맞추기 위한 것이다. 이 역시 1982년에 슬그머니 발표했다. 이 때문에 조선중앙방송은  1981년과 1982년 2월  2년 연속 ‘지도자 동지의 40회 생일을 맞이하여’라는 기사를 내보내 북한 주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김정일의 고향에 대한 선전은 없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항일투사들이 많이 살아있고 또 김정일을 후계자로 신격화 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정일의 고향을 바꿀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1980년대 들어 느닷없이 김정일의 출생지를 언바꾼 배경은  김정일의 어린 시절을 아는 빨치산 출신 원로들이 상당수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항일 혁명역사’를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체제 우상화에 이용하기위해서였다.

 

▲ 지금도 2월16일이면 신비한 자연현상 생긴다


김정일이 탄생한 날은 예수의 탄생을 훨씬 능가하는 그야말로 신비에 쌓여있다는 기록과 보도가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다. 북한 문헌들은 김정일이 출생할 때 천둥 번개가 치고 백두산 연못의 빙산이 깨지면서 신비한 소리를 냈다고 주장하고있다. 즉, 김정일이 태어나던 날은 ‘황홀경이 펼쳐진 신비의 날’이었다고 전한다. 전날까지도 눈바람이 사납게 불었고 기온이 영하 40도를 오르내렸지만 그날 만큼은 신기하게도 바람이 잦아들고 기온이 올랐다고 설명한다. 장수봉(정일봉) 아래를 흐르는 소백수의 맑은 물도 정갈한 입김을 뿜어 골짜기에 하얀 서리꽃동산을 아름답게 펼쳤고 장수봉 정수리에서는 은백색 꽃보라가 쏟아져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 역시 2003년에 평양의 교육도서출판사가 펴낸 중학교 제5학년 교과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 혁명력사>에 수록돼 있다. 

 

▲ 김정일 태어나던 겨울날 백두산에 쌍무지개 떴다


매년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을 앞두고는 으레 백두산 일대에 신비로운 자연현상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1990년 2월 21일 북한의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대대적으로 김정일의 가짜 출생지인 백두산 밀영에서 그의 생일을 전후해 수차례에 걸쳐 쌍무지개가 뜨는 신비로운 현상이 나타났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보도에 의하면 백두산 밀영의 쌍무지개는 2월1일 오전 9시30분과 2월 12일 오전 9시50분경, 그리고 김정일의 생일 하루 전날인 2월 15일 오후 4시경에 나타났는데 “정일봉을 중심으로 영롱하고 우아한 선을 그리며 이 일대를 끊임없는 환희에 넘치게 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또 “이 쌍무지개들이 겨울철에 나타난 것은 기상학적으로 보아 보기 드문 현상으로 이것은 참으로 전설 같은 일이면서 자연도 경사로운 우리 조국의 창창한 앞날을 축복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 확인을 할 것도 없이 백두산 밀영의 쌍무지개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무지개는 대기 중에 떠있는 물방울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겨울철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발생하지 않는 현상이다.


북한은 김정일의 50회 생일날 “정일봉에서 제비 216 마리가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관이 펼쳐졌다”고 주장하는 등 김정일의 생일마다 정일봉을 둘러싼 신비화 선전을 하고있다. 한 겨울철에 제비가 그것도 216마리가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올랐다니 이런 초자연적이신비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 정일봉 바위 무게와 높이는 김정일 생일대로 216t, 216m


북한에서 김일성 생일(4월 15일) 다음으로 큰 명절인  김정일의 생일 216(2월 16일)이란 숫자는 각종  우상화에 이용되고 있다. 김정일의 실제 출생지는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이지만 북한은 백두산 밀영으로 날조하고, 출생 당시 빨치산들의 존경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는 식으로 김일성-김정일 일가의 혁명역사를 신비화하고 있다.


김일성은 김정일의 출생을 조작하기위해 백두산에서 경치가 좋은 곳을 스스로 찾아내 이곳을 자신이 거느린 항일유격대 본거지가 있었던 ‘밀영지’였다고 정하고, 그 뒷산을 ‘정일봉’이라고 이름 지었다. 북한은  1987년 2월부터는 정일봉 아래에 ‘귀틀집’을 마련, 백두산 밀영  고향집이라 부르며 성역화했다.


 북한 문헌들은 정일봉과 귀틀집의 고도 차이가 216m이며, 정일봉의 높이는 216m 42cm라고 선전하고 있다. 42cm는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해인 1942년(실제는 1941년)을 뜻한다. 북한은 거대한 화강암 바위에 엄청나게 큰 글씨로 ‘정일봉’이라고 새기고, 그것을 산봉우리에 올려다 시멘트를 사용해 붙이는 공사를 진행했는데 이 바위의 무게가 216t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백두산 천지와 그 일대에 대해 측량조사를 한 결과 20m 이상 되는 봉우리가 216개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주장한다.

 

▲ 금수산태양궁전 길이 216m, 폭 415m


김일성 생전에 주석궁으로 불리면서 김일성의 집무실과 거처로 사용됐으나 죽은 후 시신이 보존돼있는 금수산태양궁전(옛 금수산기념궁전) 광장도 216과 연관돼 있다. 태양궁전 앞에는 김일성 광장의 두 배에 달하는 대형광장이 있는데 이 광장의 폭이 415m, 길이가 216m라고 한다. 4월 15일은 김일성의 생일, 2월 16일은 김정일의 생일이다. 따라서 광장의 폭은 김일성, 길이는 김정일을 각각 상징하는 것이 된다.


평양의 조선로동당 기념비는 216개의 돌로 만든 원형의 구조물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기념비의 지름은 42m이다. 42는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조작된 1942년을 가리킨다. 평안남도 연풍호를 굽어보는 철석봉 기슭에는 송암동굴(평남 개천시 서남동)이라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지난 1960년대 중반에 발견돼 2004년 개방된 이 동굴의 관광코스는  216의 10배인 총 2,160m다.

 

▲ 김정일 측근 고급외제차량 번호판은 216


김정일은 자신에게 충성하는 측근들에게 벤츠나 BMW 등 고급 외제 승용차에 ‘216’으로 시작하는 번호를 달아 선물한다. 216-0000, 216-XXXX 등이다.  216으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단 벤츠나  BMW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인사는 김정일의 측근, 북한의 최고위층을 의미한다. 김정일은 차값을 금괴로 결재했던 벤츠사의 최고 고객중 한 명이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는 이러한 번호판이 없으면 김정일의 처소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다고 는 증언한 바 있다. 또한 김정일의 전용 비행기는 216호라고 부른다. 216호 기내에는 넓은 라운지와 개인용도의 방도 몇 개 있다. 평양 순안공항의 일반 터미널 반대쪽에 216호 전용 터미널이 있다.

 

▲ 6을 세 번 곱하면 216...666은 김정일 대의원 선거구


북한의 로동신문 1999년 7월6일자는  ‘위인전설 666’이라는 논평을 통해 “6을 세 번 곱하면 216, 즉 김정일의 생일인 2월16일이 되고, 북한이 조선반도에서 6번째(단군조선 ⟶고구려 ⟶발해 ⟶고려 ⟶조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로 세워진 국체(國體)”라고 밝혔다. 666은 또한 김정일의 선거구 번호다. 김정일은 1998년 7월 최고인민회의 10기 대의원 선거 당시 666호 선거구에서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666은 기독교의 성서(요한계시록 13장 18절)에 나오는 악마(사탄)의 숫자이기도 하다. 김정일은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는 649선거구에서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북한 정부기관지 민주조선은 ‘649’가 “무심히 대할 수 없는 숫자”라며 “6, 4, 9 세 숫자를 곱하면 216이며, 거꾸로 9와 4를 곱한 뒤(36) 6을 더하면 42란 숫자가 된다”고 밝혔다.


히브리어와 헬라어(그리스어) 또는 영어의 알파벳 문자 A~Z에 각각 숫자 값을 부여해 문자로 표기한 것을 수치화해 숨겨진 의미를 찾는 성서 해석법을 ‘게마트리아’(Gematria)라고 하는 데 게마트리아로 계산하면 네로, 히틀러, 김정일은 수치가 666이 되는 이름이다. 네로의 이름인 ‘Caesar Nero’를 히브리어로 쓰면 ‘NRON KRS’가 되는데 이 값은 666이 되며, 그리스어(Neron Caesar)로 쓰면 666의 두 배인 1332가 된다.


또한 A=100·B=101·C=102~Z=125로 하고 2차 세계대전의 장본인 아돌프 히틀러의 수를 계산해 보면 666(HITLER=107+108+119+111+104+117)이 된다. 따라서 성경과 게마트리아의 해석대로라면 김정일과 네로, 히틀러를 상징하는 666은 ‘짐승’(beast)을 뜻하는 것이 된다.


▲ 김정일은 하느님이다


1996년 2월 18일자 로동신문은 “이북이 현세 천국이고 이북 민중이 현세 천국의 향유자, 주인공이라고 볼 때 하느님이 있는 곳은 이북이며 현세 천국의 창업을 이루어놓으신 김정일 영도자님은 정녕 이 땅위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다”라고 보도했다.

 

조선중앙TV는 2011년 12월 김정일이 죽자 세계 각국 정상들이 한 말이라며 ‘예술과 건축의 대가’ ‘지구의 수호신’ ‘현세의 신’ ‘최고의 작가’, 심지어 ‘세상을 놀라게 한 컴퓨터의 대가’라고 찬양했다. 특히 ‘수령님(김일성) 쓰시던 축지법, 오늘은 장군님(김정일) 쓰신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선전가요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는 북한의 큰 행사에서 흔히 불리는 노래다.  1996년 제작된 왕재산경음악단의 정렬 작사, 김운룡 작곡의 이 선전가요는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이 축지법을 쓴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에 열린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 공연에서도 남성 합창단이 이 노래를 불렀다.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축지법 축지법 장군님 쓰신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천하를 쥐락펴락
방선천리 주름잡아 장군님 가신다
수령님 쓰시던 축지법
오늘은 장군님 쓰신다
백두의 전법 신묘한 전법 장군님 쓰신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천하를 쥐락펴락
구름타고 오르신다 최전연 고지위에
수령님 쓰시던 축지법
오늘은 장군님 쓰신다
백두의 전법 신묘한 전법 장군님 쓰신다

험산준령 비켜선다 번개도 뒤따른다
장군님의 지략으로 승전고 울린다
수령님 쓰시던 축지법
오늘은 장군님 쓰신다
백두의 전법 신묘한 전법 장군님 쓰신다
축지법 축지법 장군님 쓰신다

 

▲김정일 사망하자 백두산에 요란한 굉음⦁신비한 노을


북한 언론매체들은 김정일이 사망한 2011년 12월 17일 백두산이 요란한 굉음을 냈으며 사망후 수일동안에도 도처에서 신비스런 자연현상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011년 22일 김정일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19일을 전후해 백두산 천지와 정일봉 상공, 김 위원장 동상 주변 등에서 특이한 현상이 잇따라 관측됐다고 전했다. 사망 당일인 17일 백두산 천지에서 얼음이 천지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지는 현상이 관측됐으며, 장군봉 능선에서도 이런 현상이 목격됐는데 이는 관측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김정일에 대한 조문이 시작된 20일 오전에는 백두산에 매섭게 치던 눈보라가 갑자기 멎었고, 붉은색의 신비한 노을이 백두산에 새겨진 김 위원장의 친필 ‘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을 비췄다고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어 20일 오후 9시20분께 어디선가 날아온 백학 한 마리가 함흥시 동흥산 언덕에 있는 김정일의 동상 위를 세 번 돌고 나무 위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오후 10시께 평양 방향으로 날아갔다고 전했다. 또한 21일 개성지역에서는 눈 내리는 하늘에 번개가 치고 천지를 들었다 놓는 우레가 울었다고 주장했다.


로동신문도 22일 “21일 오전 8시30분께 성천군 신성천 노동자구에 위치한 북창지구탄광연합기업소 신성천 콘크리트 동발공장의 조의(弔意)식장에 한 쌍의 산비둘기가 나타나 조의식장에 들어오려고 부리로 창문 유리를 계속 쪼았으며 마당에 있는 복숭아나무 가지에 앉아 30분 동안 슬피 울었다”고 주장했다.

 

▲생애 첫골프에서 홀인원 11개...사상 최고의 골프선수 김정일


김정일의 골프 실력은 세계 최고인 것으로 풍자되고 있다. 호주의 파이낸셜 리뷰지는 지난 1994년 9월 14일 평양골프장의 박영만 골퍼와의 회견을 통해 김정일이 1994년 평생 처음 라운딩을 했는데, 첫 홀에서 ‘이글’을 잡고, 이후  ‘홀인원’ 5개를 포함해 총 34타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총 34타라면 18홀에 파 72를 기준으로 할 때에 무려 38언더를 친 것으로서 세계 골프 역사상 최고의 기록이며, 김정일이 아니면 앞으로도 도저히 갱신할 수 없는 기록이다. 이같은 기록은 골프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김정일을 신격화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라 생각돼 황당하기 그지없다. 참고로 골퍼들이 ‘홀인원’을 할 수 있는 확률은 3만분의 1이라고 한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18홀 최저타 기록은 59타다. 통산 메이저 최다 우승(18회)에 빛나는 ‘황금 곰’ 잭 니클라우스(미국)가 평생 한 홀인원이 20차례 정도다.


그러나 미국 스포츠 전문 케이블채널 ESPN은 김정일 사망 이틀후인 2011년 12월 19일자 보도에서 북한 방송을 인용, 김정일이 1994년 평양골프장(파 72·7700야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골프를 쳤으며 스코어는 38언더파 34타였고 보통 사람이 평생 한 번 하기도 힘들다는 홀인원을 무려 11번이나 했다고 전했다. ESPN은 홈페이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골퍼가 사망했다”(Greatest golfer ever dies today)며 비꼬았다.


 김정일의 이 같은 스포츠 실력에 대해 골프 관련 유머 전문 블로거인 윌리엄 K. 울프럼은 “김정일은 겸손한 사람인 것 같다. 그는 자신에 대해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울프럼은 “김정일의 골프실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점은 거식증 환자인 케이트 모스가 핫도그 먹기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의 골프 전문 매체 골프닷컴은 2013년 4월 25일 골프에 나쁜 이미지를 심어준 세계 10대 인물을 뽑아 발표하면서 김정일을 포함시켰다. 골프닷컴은 김정일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생애 유일하게 치른 라운드에서 38언더파 34타를 쳤으며 홀인원만 11개를 기록했다고 한다”고 적었다. 뉴욕 타임스도 이날 비숫한 보도를 했다. 황당무계한 기록을 냈다는 사실을 자랑한 것이 골프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남겼다는 평가인 셈이다.

 

김정일이 생애 첫 골프에서 홀인원 11개를 날림으로써 사상 최고의 골프선수가 됐다고 보도한 뉴욕 타임스

기사입력: 2015/02/15 [17:28]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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